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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3

by 북노마드 2021.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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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 나는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술이 들어가면 하루종일 나를 짓눌렀던 우울감, 상실감, 지리함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기분이었다. 헤밍웨이는 우울증과 알콜중독을 앓다가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어쩌면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알콜은 우울증에 빼어난 치료제임은 분명하다. 그 결과를 책임지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세상에 거만하게 소리친 다음날은 그 누구보다 세상에서 작아졌다. 날이 밝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는 나는 헝크러진 머리칼을 부여잡고 이불 속에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았아지.
나 술 끊었다.

그렇게 굳게 결심하고, 친구들 앞에서 호언장담을 했지만 그날  저녁에 난 또 술 앞에 앉아 있었다.

술은 백해무익하다는 걸 아무리 일해도 늘어나지 않는 통장잔고와 다음날 반복되는 숙취, 그리고 매번 잃어버리는 핸드폰과 가방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유일하게 좋은 것은 인간관계?

인간관계의 윤활유라는 말은 개나 줘버려라.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할 뿐이었다. 그들은 술친구가 필요할 때만 나에게 연락했다. 물론 나도 그랬지만.

그랬던 내가 술을 끊고 그  시간에 피아노를 연습하게 되었다. 쌤이 나에게 해 준 칭찬은 순전히 술을 끊고 빈 시간이 많아져서 가능해졌다.

근데 어떻게 술을 끊었냐고?

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 같은데, 그래서 실망을 안겨줄까 두렵다.

언제부터인지누 모르겠지만 술을 마신 다음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심각할 정도였냐고? 그랬다면 이 글을 쓰고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심장이 더디게 뛰는 것 같고, 피가 제대로 순환되지 않고, 공기를 폐 깊숙이 들이쉬기가 힘든 상태?

의학적으로 박식하지는 않지만 순환장애 중 하나일게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하긴 얼마나 오랫동안 술을 마셨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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