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한국형 심리 스릴러 소설? 편혜영의 장편소설 『홀』이 남긴 강렬한 여운

by 북노마드 2024. 11. 4.
728x90
반응형

소설을 읽는 내내 스티븐 킹의 걸작 <미저리>가 연상이 되는 한국소설.

 

그래서인지 2024년 4월에는 이 소설이 헐리우드 영화사가 제작을 맡아 영화화까지 진행된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사실 영상화가 제대로만 된다면 미저리 못지 않을 걸작 영화가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바로 편혜영의 장편소설 "홀(The Hole)" 입니다.

 

그녀의 일상은 평범하기 그지 없다고 합니다. 사람도 별로 만나지 않고요.

 

그런데 그런 그녀가 약간은 공포스럽고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즐겨 쓴다고 하네요.

 

그런 그녀에게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소설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냐구요.


Q 일상의 균열이나 틈을 작가님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로 볼 수 있을까요?

 

균열 자체가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아요. 균열이 있더라도 일상은 이어지고, 혹은 아예 감지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고요. 제가 관심이 가는 것은 균열이 있음에도, 징후나 기미가 느껴졌는데도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라는 책에서는 독가스 테러 직후 상황에 대한 여러 사람의 인터뷰를 볼 수 있는데요. 그 중에 사건이 일어난 날, 몸도 좋지 않고 이상한 냄새도 나고 유난히 현기증도 느끼지만, 언제나 했던 대로 지하철역을 나가자마자 우유를 사서 사무실로 출근하는 사람 얘기가 나와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궁금해요. 뭔가 작은 기미가 느껴졌는데도, 삶의 균형을 잡으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 대한 애틋함이 있어요.

Q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소설을 쓰기 위해서 소재를 찾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실제 일어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다고 그대로 쓰지는 않아요.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 다큐멘터리에서 본 장면 등이 소설의 단초가 되기도 하고요. 다양한 통로로 이야기의 입자들이 만들어져요.

Q 소설마다 소재가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일관하여 드러내고 싶은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인가요? 작가님의 작업세계라고 할까요?

 

예전에는 균열의 종류나 양상에 관심이 있었어요. 사람을 느닷없이 조금씩 흔들어 놓는 것들. 인간관계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 감당할 수 없는 채무 같은 것들이요. 지금도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지기도 한 게, 균열이 있음에도 그 균열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상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살아가게 하는 힘, 그게 뭘까,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또한 그녀는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는데요. 학생들에게 소설가가 되기 위한 조언도 - 다소 뻔할 수 있지만 -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진리일 수밖에 없는 다독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일깨워줍니다.


Q. 교수로서의 모습도 궁금해요. 글을 쓰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읽어라’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무엇이든 쓰려면 자기가 쓰려는 것보다 몇 배는 되게 읽어야 쓸 수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 에요. 좋은 글을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해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작가들이 어떻게 썼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로 표현된 세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인간에 한, 세계에 한, 생각에 한 경험치가 늘어나죠. 그 속에서 자기 생각이나 의견, 입장 같은 것도 조금씩 정리를 할 수 있고요.


일상의 균열... 알 듯싶으면서도 아리송한 말.

 

이 말의 진의를 깨닫게 된 것은 바로 그녀의 장편소설 '홀'을 통해서 입니다.

사실 이 소설에 다시 손을 댄 것은 한강 작가 탓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한 인터뷰에서 한강 작가는 자신의 문학 세계에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이 지대한 영향을 줬다고 밝혔습니다. 귀가 얇은 저로서는 당연히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에 눈이 갔습니다. 그래서 일단 몇 개월 전 묵혀 두었던 이 소설을 시작해 보기로 했습니다.

소설 '홀'은 2018년도에 미국의 셜리 잭슨상(*셜리 잭슨 상'은 최근 1년간 출간된 심리 서스펜스, 호러, 다크 판타지 작품을 장편, 중편, 중단편, 단편, 단편집 등 부문으로 나눠 시상한다)을 수상하기도 하는데요. 다 읽고 나니 과연 그럴 만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소설은 오기라는 40대 남성이 병원에서 눈을 뜨면서 시작합니다. 의식은 있지만 몸을 전혀 거동할 수 없고 오로지 눈을 깜빡여서 - 네, 아니오라는 - 의사표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태. 오기는 아내와 여행을 가는 도중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아내는 죽고(당연히 의식을 차린 후에 알게 됩니다) 자신도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의식을 되찾은 오기의 곁에는 장모가 앉아 있습니다. 오기는 고아로 어떤 친척도 없습니다. 그에게 가족이라고는 아내 밖에 없는 셈인데(아기를 가지려고 시험관 아기 시술도 시도해 보지만 끝내 임신에 실패하고 맙니다) 이제 그가 의지해야 할 유일한 사람은 장모인 겁니다. 장모 또한 남편을 몇 해 전에 먼저 저 세상으로 보냈고 이제는 하나 있는 자식인 딸마저 잃었습니다. 그녀에게도 이제 유일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사위인 오기 뿐이었습니다.

얼마간의 입원 후에 오기는 집으로 옮겨집니다. 오기의 집은 정원이 넓습니다. 몇 해 전에 아내가 오기를 설득해서 다소 무리해서 정원이 있는 집을 고른 것입니다. 오기의 아내는 정원에서 나무를 가꾸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녀는 몇 차례 책을 내기 위해 도전을 하지만 번번히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게 됩니다. 그렇지만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에게 독특한 버릇이 생겼는데 주위의 모든 것을 강박적으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건 오기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기가 약속을 잘 지켰을 때도, 어떤 말실수를 했을 때도, 과거의 기록을 끄집어내서 고쳐지지 않고 있다고 윽박지를 정도까지 강박적이었습니다.

장모가 나름 철저한 면접을 보고 고용한 간병인은 오기의 호출(오기는 간병인이 필요할 때면 호루라기를 부릅니다)에 늘 늦습니다. 계속된 호출에 어쩔 수 없이 오기의 방에 들어온 간병인은 오기를 어린 아이 대하듯 쓰다듬으면서 타이릅니다. 그런 간병인에게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눈빛 말고는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오기는 답답합니다. 물론 이제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왼손으로 글씨를 쓸 수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몇 자 적어내는 것도 꽤나 고된 작업입니다. 그 간병인에게는 군대를 막 제대한 대학생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오기의 집에 드나들더니 언제부터인가 제 집 드나들듯이 오기의 집을 찾습니다. 심지어 오기가 해외출장으로 구해온 비싼 외국 술까지 거실에서 마음대로 퍼마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기의 방에 들어와서 오기의 - 움직이지 못하고 감각도 없는 - 두 발을 흔들면서 병신 XX야, 라는 말을 늘어놓기까지 합니다. 꼼짝 못하는 오기는 화가 나지만 동시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얼마 안 가 장모에게 모든 게 들통난 간병인은 쫓게 나게 됩니다. 장모는 조만간 새로운 간병인을 들일 때까지 자신이 오기를 돌보겠다고 합니다. 장모의 오묘한 눈빛을 보고 있으면 오기는 어쩐지 섬뜩해져 옵니다. 장모의 눈빛을 통해 오기는 혹시 장모가 아내가 자신에 대해 기록해 놓은 메모들을 모두 보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오기는 본 적이 없지만 아내의 강박적인 성격으로 미루어 봤을 때 거기에는 오기에 대한 모든 비밀들이 적혀 있을 겁니다.

재활을 돕는 물리 치료사가 찾아왔을 때 오기는 장모가 정원에 큰 구덩이를 파고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거기에 연못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입니다.

장모는 정원을 가꾼대는 구실로 수목들을 먼저 담장 곁으로 옮겨 심습니다. 오기가 낮은 담벼락 너머로 유일하게 넘나 볼 수 있는 바깥 세상이 가려집니다. 그 다음에는 오기의 방 창가에 몇 개의 막대기를 꽂습니다. 그 막대기를 따라 생명력이 무척 강한 넝쿨들이 휘감아 자라기 시작합니다. 이제 오기에게 바깥 세상은 영원히 가려져 버립니다. 게다가 장모는 아예 새로운 간병인을 구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자,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사실 읽으면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교통사고에서 살아남은 오기.

그는 과연 의도적으로 교통사고를 낸 것일까?

아니면 어쩌면 아내를 의도적으로?

그렇지만 본인마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리고 장모는 정말로 아내가 써놓은 메모를 봤던 것일까?

장모는 진실로 오기가 재활되기를 바라는 것일까?

유일하게 남은 가족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처음부터 팽팽하게 형성된 미스테리는 작품을 읽는 내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소설 <홀>을 읽고 나면 편혜영 작가가 말한 '일상의 균열'이 무슨 말인지 절실히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흥미와 몰입도 면에서 압도적입니다. 강력하게 추천 드립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