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루키가 루키한 작품
기사단장 죽이기는 역시나 하루키가 하루키했다, 라는 생각이 든 작품이었습니다.
총 2권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을 읽으면서 1권의 절반까지는 약간은 지루한 기분이 드는 탓에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점(절반)을 넘어가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 이건 나의 의지로서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이 - 이야기 속에 빨려 듭니다.
노르웨이의 숲,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등을 읽으면서 하루키가 다분히 현실적인 작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소설에는 늘 아무 잘 생긴 것도,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문제가 - 이른바 루저라고 불리는 - 있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평범한 이별을 합니다. 누구나 할 법한. 물론 특이한 점이라면 주인공이 죽음과 가까이 있다는 겁니다.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첫사랑이 자살을 했고, 1973년의 핀볼에서도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 자살인지 불의의 사고인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 전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는 남자 주인공이 나옵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에서도 아마 - 읽은 지 꽤 시간이 흘러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 죽음이 가까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작품들에서도 꽤나 상상적인 공간들이 나옵니다.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아주 외곽의 산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정신병원(그 곳 사람들은 요양시설이라고 부르지만)이 나오고, 1973년의 핀볼에서도 이제는 고물이 되어 버린 핀볼 기계가 모여있는 고물상 같은 공간이 나옵니다. 다분히 현실적인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쩐지 꿈 속에서나 일어날 것 같이 묘사가 됩니다.
이런 류의 하루키의 작품들에서 하루키는 완전한 상실감을 겪으면서 - 이렇다 할 성장이라고 보여지지 않고 - 이야기를 끝맺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인공이 성장을 하면서 끝맺는 소설들이 있습니다. 하루키의 소설답지 않게 - 하루키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다수 30대에 접어드는 남자들이고, 그들이 대학교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해변의 카프카가 가장 대표적인 작품일 것입니다.
그 맥을 이어 받는 게 개인적으로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라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다자키 스쿠루라는 소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아무 것도 모르고 친구들 사이에서 제명(왕따)당한 한 남자가 과거를 찾아 떠나면서 내적 성장을 하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물론 사라라는 여자를 만나면서 그 여정이 시작되는데, 결국 하루키는 사라라는 여자와 다자키가 어떻게 되는지 결론을 내주지 않습니다만.
여담이지만,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에세이를 보면 다자키 스쿠루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나옵니다. 애초에 하루키는 다자키 스쿠루라는 작품은 단편으로 쓸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 더 읽고 싶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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