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당최 나란 인간은 지속성이 부족하다. 주의력 결핍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걸핏하면 새로운 것, 장소에 눈을 돌리는 인간이다. 그래서인지 대학시절 재미나게 읽어냈던 이 책의 방법론이 떠오른다.
조승연의 "공부기술"
# 저자소개 - 조승연
1981년생. 여의도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 가는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현재는 뉴욕대 경영학과인 스턴 비즈니스 스쿨 3학년에 재학 중이며 금년에는 줄리어드 음대 이브닝스쿨에도 합격해 동시에 두 개의 대학에 재학중인 '희귀한' 재원이다. 중학교 때는 수학점수가 50점밖에 안 될 정도로 성적이 부진했다. 책읽기만 좋아해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던 왕따였고 수업시간에 딴짓만 하다가 '이런 숙제가 무슨 의미가 있냐'며 일부러 숙제를 안 해가서, 늘 교사의 체벌을 면할 수 없었던 반항아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공부도 기술이다'는 것을 터득한 덕에 지금은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두 대학의 학사과정과 연습 스케줄을 즐겁게 동시에 해내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미 전국 라틴어 경시대회에서 우수상에 해당되는 마그나 쿰라우디를 받아 현지 미국 선생들을 놀라게 했으며 대학입학 수학능력고사 중 아이비리그 등 명문 대학에서만 요구하는 주관식 시험인 SAT2에서 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작문과 독해부문에서 만점을 받았다. 대학에서는 우등생에 해당하는 DEAN'S HONERED STUDENT로 선정되었다.
당시 책이 발간되었을 당시, 저자 조승연에 대한 소개이다. 나와 비슷한 연배인데, 무엇보다, 다 가진 듯 싶었다. 지금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당시에만 해도 미국물 먹고 온 사람들은 뭔가 달라보이고, 영어 잘 하는 사람들 보면 뭔가 있어 보인다. (*뭐 사실 이건 지금도 그런 듯.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영어 사대주의는 한국에서는 모르긴 몰라도 향후 몇 백년은 갈 것이다. 그러니 영어 잘하시는 분들은 콘텐츠 잘 한번 만들어 보시라. 물론 그만큼 레드오션이지만)
사실 재미나게 읽어냈지만, 내 공부기술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던 책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조승연의 썰능력이 대단했던 것 같다. 어렵지 않고, 고개를 납득거리며 책을 손에 놓지 않고 끝까지 읽게 하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당시 공부기술 책에서 당연 탑은 누가 뭐라해도 이 책이었다.
홍정욱의 "7막 7장"
# 저자소개 - 홍정욱
2002년 12월 ㈜헤럴드미디어를 인수,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으며 국내 최초의 대중경제문화지 「헤럴드경제」와 국내 최대의 종합영어신문 「코리아헤럴드」의 발행인으로서 지식정보기업 창출에 힘을 쏟았던 인물이다.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구정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케네디의 모교인 초우트 로즈마리 홀 고교에 입학하였으며 축구부 주장과 학교신문사 편집장, 그리고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에는 미국 NBC방송의 최연소 수습기자로 활약했으며 조기 특차전형으로 입학한 하버드대학에서 동북아지역학을 전공했고 3학년 때에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편입학하는 등 다양한 대학생활을 경험했다. 졸업 당시에는 논문 「신기능주의적 관계 : 한 중 외교 데탕트, 1978~1992」로 최우수 사회과학 논문상과 숨마 쿰 라우디, 그리고 토머스 ?스 상을 수상하였고 1994년 북경대학교 국제정치대학원에 진학하여 동북아 정세에 관해 공부했으며 1995년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법과대학원에서 법무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직접 읽어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짝궁녀석이 미친듯이 빠져들어서, 쉬는 시간 때마다 책 내용을 나한테 설명해 주기 바빴다. 거절을 잘 못하는 내 성격 탓에 뜨거운 여름께 시작한 그 일정은 온 몸이 오그라드는 겨울께까지 접어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눈을 반짝이며 신나하는 짝궁녀석의 순수한 마음을 도저히 거부하기 힘들었다.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미국으로 넘어간 중고등학교 시절 영어가 너무 안 늘어서, 특히 글쓰기 실력이 너무 젬병이라(*사실 아무리 언어습득의 황금기인 유년시절이라고 해도, 동년배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하루빨리 스피킹 실력이 늘어야 하는데, 얼마나 스트레스였겠는가. 게다가 글쓰기라니) 매일 밤 영영사전을 1페이지씩 암송하고, 그걸 뜯어내서 먹었다는 일화. 복습 따위는 안중에 없는 사면초가, 배수지진의 전략술이다. 다른 이야기는 별로 감흥이 없었지만, 이 일화만은 (비록 어느정도 왜곡이 됐을지언정)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후로 몇십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사전 한페이지는 커녕, 모퉁이 조각도 먹어보진 못했지만.
무튼 다시 조승연의 공부기술로 돌아가면, 책에서 재밌는 내용이 나온다.
"20분마다 과목 바꿔서 공부하기"
이 부분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송곳을 준비해서 졸음이 쏟아지면 허벅지에 꽂아가며, 진득하게 공부하는 것이 더욱이나 미덕인 시절이었다. 이건 사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사람 개개인의 취향을 존중해야 하는게 맞는 것 같다. 20분마다 과목을 바꿀 경우 집중이 되레 방해가 되시는 분들도 있을테고, 20분이 뭐야? 5분만에 딴짓해야 하시는 분들도 있을테니 말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공부기술을 실제로 적용해 보지 않았지만, 작금에 책을 많이 읽고 있는데, 너무 방대한 책을 읽고 있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하면 많은 책을 더 효과적으로 볼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 빠졌다. 물론 "독서의 신"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는 조금 마음이 편해졌지만 말이다.
- 속독에 사로잡혀 버리는 것이 나쁘다는 뜻입니다. 모든 텍스트를 일정한 독서법으로 속도만 빠르게 읽는 것은 독서의 의의가 아닙니다. 그건 마치 음식 빨리 먹기 대회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경험해 보았겠지만,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은 상당히 빨리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처음 유럽 여행을 가게 되었다면 런던이나 파리의 여행 안내서를 여러 권 사서 읽어 볼 테지요. 또 어느 정도 읽다 보면 그 책들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읽어내는 속도가 제법 올라가게 되는 법입니다. (중략) 이 모든 사례는 비슷한 내용의 책들은 빨리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며, 이것이 본래의 속독술입니다. (중략) - "독서의 신" 중에서 p.170
-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문제는 분명 '도저히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일 것입니다. 그래서 포기하거나 진저리를 내거나 자신에게 실망해 버립니다. 도대체 왜 그럴가요? 바로 쉬지 않고 전력 질주하듯이 읽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저는 스무 살 정도에 처음으로 플라톤을 읽은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그 난해항 그리스 인명과 구어체는 정말이지 친숙해지기 어려웠습니다. (중략) 그렇게 모래를 씹는 심정으로 <향연>을 읽었습니다. (중략) 그리고 3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우주관을 주제로 한 대화편인 <티마이오스>를 읽을 때는 훨씬 수월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전에 읽은 헤르만 와일의 <수리철학과 과학철학>에서 와일이 <티마이오스>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읽었기 때문입니다. 와일은 확실한 플라톤주의자는 아니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자연철학자로서 자신의 생각을 거의 완벽할 정도로 이해하기 쉽게 제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분명히 그런 기복이나 강약의 느낌으로 플라톤을 읽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니 놀랄 정도로 플라톤이 재미있었지요. - "독서의 신" 중에서 p.104
어떤가?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가? 아, 하루 빨리 속독법을 배워서 이 수많은 정보를 습득해 봐야겠다. 속독법 학원 가면 안구 굴리기 연습하는데, 괜히 안약 낭비하지 마시고, 그냥 꾸준히 책을 읽으라. 심지어 나는 이 책도 읽어봐서, 별짓 다 해봤는데, 결국 헛소리(Bullshit)이다.
(*참고로 이 책의 방법대로 자격증 준비했다가, 폭망했다. 모르겠다. 서두에 언급했지만, 나도 진득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니, 10년 꾸준히 했으면 지금 경지에 올라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부디 성공하신 분들은 여기에 댓글 남겨 주시라. 다시 시작해 보겠다)
"20분마다 과목 바꿔서 공부하기" 얘기하다가 너무 돌아왔는데, 무튼 <독서의 신>에서 비슷한 말이 언급된다.
- "선생님은 책을 몇 권씩이나 동시에 읽으신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복합 독서법'을 말하는군요. 언제나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거기에는 세 가지 독서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비슷한 종류의 책은 가능한 한 함께 읽거나 비슷한 시기에 읽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읽을 수 있고 머리에도 쉽게 들어옵니다.
둘째는 '책에서 책으로' 읽는 것입니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상호텍스트성'이라고 하더군요. 즉, 간 텍스트성'이라는 의미입니다. 크리스테바는 롤랑 바르트의 제자입니다. 그가 말하는 상호텍스트성이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중략) 제 스스로를 돌아보면, 저는 뭔가 재미있는 책을 만나면, 그 책 안으로부터 다른 책으로 연결해 가는 것에 열중해 왔습니다. 이를테면, '문어발식 확정'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시 말하자면, 상호텍스트성에 빠져들기를 좋아했던 것이지요.
(중략) 복선적이고 복합적인 방법으로 읽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어쩌면 수많은 책과 네트워크해 나갈 가능성을 가진, 말하자면 '빛을 발하고 있는 한 권'을 반드시 만나게 됩니다. 그것을 저는 '열쇠 책'. 즉 '키 북'이라고 부릅니다. 이 키 북을 기본으로 해서 읽어 나가는 것이 세 번째 복합 독서법입니다. 이런 식으로 복합적으로 책을 읽어 나가면, 그런 키 북을 만날 기회도 늘어납니다. 키 북은 처음부터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참 뒤에 깨닫게 됩니다. - "독서의 신" 중에서 p.205~207
나도 이 방법을 적용해 보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키 북을 발견할 생각도 없고, 비슷한 종류의 책을 읽기 보다는 나는 두번째의 '상호텍스트성'을 의식해 보기로 했다. 언뜻 별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책들을 네다섯권 배열하고, 그것을 5분 간격으로 바꿔가며 오가는 것이다. 어제 오늘 해 보고 있는 책들 복합 독서리뷰, 지금 시작해보겠다.
1. "읽는 인간" written by 오에 겐자부로
#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단순하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이 말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생존해 계신다. 나는 그들의 결과물(문학상을 받은 소설자체)은 좀처럼 읽지는 않는데, 세계가 인정하는 위대한 결과물을 낸 사람들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뒤돌아보지 않고 샀는데, 이 책도 책장에 꽂아놓았다가 최근에 다시 꺼내 들었다.
도쿄 대학에서 불문과를 전공한 오에 겐자부로는 본인 소설의 시작을 '프랑스 소설 원문과 모국어인 일본 번안문을 같이 보면서'라고 정의한다. 그 시작이 신선하지 않는가?
그는 대학시절 존경했던 와타나베 가즈오가 번역한 <동물들ㆍ사자의 시>를 읽으면서 그의 번역에 감탄하기 시작한다.
- 특히 <동물들>에 포함된 단편 중 <Les Chevaux>, '말'이라는 소설이 있었는데, 그 작품의 원작과 번역이 참 좋았습니다. 원작을 한 줄 한 줄 노트에 옮겨 적고 선생의 번역을 그 아래에 적어 넣으면서, 그것이 얼마나 훌륭한 번역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중략)
'공생감'이라는 단어가 사전 색인은 없었을 겁니다. '공생'이라는 말조차도요. 이런 단어는 전쟁이 끝나고 30년쯤 지나서야 자주 언급되었습니다. 그런 유행을 한참 앞서 '광대한 공생감'이란 말을 와타나베 씨가 말하자면 지어내어, cete immese communion 대신 넣었던 것이죠. 이렇게 말과 표현을 만들어가는 것이 선생의 번역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중략)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이 방법으로 소설을 써보자고 다짐했어요. 저는 이렇듯 프랑스어 텍스트와 훌륭한 번역을 같이 읽으며, 제가 쓸 소설 언어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프랑스어는 지금까지 일본어에 없던 언어 표현 방법이지만, 이렇게 번역하면 나도 이해할 수 있구나, 지금 이 생각을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일본어로 만들어 쓴다면 소설을 쓸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읽는 인간' 중에서 p.61~66
그렇게 그는 대학교 3학년 겨울 학기가 끝나고, 봄방학 동안 소설을 써낸다. 바로 <기묘한 일>이라는 단편입니다. 이 소설은 평론가들의 호평을 들으며 데뷔한다. 1957년의 일이다.
우리도 충분히 소설을 쓸 수 있다. 소설이 거창하다면, 우리의 언어생활을 좀더 풍성하게 만들어보기 위해서 와타나베 가즈오씨의 '공생'이라는 말처럼 조어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신조어라고 무의미한 줄임말이 아닌, 우리만의 조어 말이다. 언어의 탄생은 새로운 의미의 탄생이자, 새로운 세상의 창조이다.
갑분싸.
이런 말 말고, 이런 상황을 나라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굳이 재미가 없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늘 일어나는 당혹스런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말. 나만의 조어.
얼음이 쏟아져 내렸다. 우박이 내렸다.
나도 잘 생각은 안 나지만, 발상의 전환을 해보고자 하는 마음, 의지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더욱 다채로운 세상을 살 수 있다.
2.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 written by 어니스트 헤밍웨이
# 이 책은 2년전 스페인을 갈 때 함께 한 책이다. 당시 스페인 역사를 알기 위해 택한 "유럽의 첫번째 태양 스페인", 스페인이 사랑한 화가 고야를 만나기 위해 선택한 "프라도 미술관", 그리스의 대문호가 밟은 그 대지를 오롯이 내가 함께 호흡해보기 위해 택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 그리고 이 책이다. 1936년과 1939년에 벌어진 스페인내전을 다룬 책. 나는 민음사에서 나온 2권으로 된 누종울을 샀지만,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아 5분의 1만 읽다가 접었던 책인데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간결체로 유명한 헤밍웨이라서 그의 문체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더욱 눈살이 찌푸려졌던 부분들이 있다.
- 그는 구슬 같은 땀을 흘리고 있었고, 험한 비탈길을 올라오느라 허벅지 근육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p.15
'구슬 같은 땀'이라는 표현은 너무 식상하지 않은가? 1940년에 쓰여진 작품이다. 1899년생 헤밍웨이이그의 나이 41세에 쓴 작품이다. 과연 원서에 어떻게 썼을까?(*사실 이 생각은 방금 "읽은 인간" 리뷰를 쓰면서 했다. 아까 읽을 때까지만 해도 '구슬 같은 땀'에 cliche한 표현이라고 명기만 해 두었다. 이게 세이고가 말한 '상호 텍스트성'이 아닐까?) 오늘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원서를 구해봐야겠다. 원서와 번역본 같이 읽기에 도전해봐야겠다.
- 그는 미끄러뜨리듯 짐을 풀어 개울가 조약돌들 사이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p.15
여기서도 나 같으면 '미끄러뜨리듯', '조심스레'라는 부사구는 뺐을 것 같다. 있으나 마나한 표현이 아닐까 라는 생각.
3. "Origin" written by Dan Brown
# 사실 영어공부를 안 한지 너무 오래 되었다. 예전에는 감히 영어소설까지 도전해 볼 정도로(*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미쳤던 것 같지만, 어찌됐던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다.(*개인적으로 최상의 학습법은 아웃풋이라고 생각하기에, 다분히 한국적 상황에서 스피킹보다는 라이팅이 나의 최상의 아웃풋이었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최상의 방법이었다. 또 제 2의 해리포터 될지는 나도 모르고, 당신도 모르지 않는가) 원서를 샀지만 너무나 진도가 느리다. 한페이지를 읽기도 너무 버겁다. 사실 이 한페이지 힘들여 읽을 동안에 한국말로 된 책 10페이지는 읽을 수 있으니, 생산성 측면에서는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무튼 그래도 버킷리스트를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내키지 않더라도 GRIT(열정 있는 끈기, 투지)을 발휘해서! 까짓 5분 정도야!!!
- Al-Fadl's skin was blistered and burned, his throat so raw he could barely pull a breath. p.62
당신이라면 어떻게 해석, 아니 직접 소설을 번안한다고 상상하고, 어떻게 한국말로 써내겠는가?
일단 단어공부 들어간다.
blister
if your skin is raw, it is very sore ex) His face was raw from the cold.
그는 온몸의 피부가 타들어갔고, 물집으로 터져나갔다. 타들어간 목으로 그는 숨조차 들이키기 힘들었다.
일단 나는 이렇게 썼는데, 의미가 너무 변질된다고 타박 마시라. 돈 받고 하는거 아니지 않는가? 다시 한번 "읽는 인간" 소환해보겠다.
- 이런 식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외국어와 일본어 사이를 오가면서요. 이렇게 언어의 왕복, 감수성의 왕복, 지적인 것의 왕복을 끊임없이 맛보는 작업이,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문체를 가져다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은 번역을 하게 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소설을 썼습니다. 이렇게 해서 제 소설의 세계가 시작되었던 것이지요. -"읽는 인간" 중에서 p.67
그렇다. 나도 오에 겐자부로의 의견에 동의한다. 언어를 왕복한다는 것은 감수성을 넘나드는 것이다. 간만에 일본어를 읽고 싶은 날이다. 아무 도움 없이 오롯하게 내 언어의 힘으로, 내 감수성의 힘으로, 일본이라는 세상과 한국이라는 세상을 넘나들고 싶다.
먼지 쌓인 원서를 하나 꺼내 보시라. 그리고 그 세계와 한국이라는 세계를 잠시 오고 가라. 그러다 보면 어찌 아는가? 이미 당신만의 소설이 시작되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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