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만난 영국인 작가 줄리언 반스. 46년생으로 올해 나이 74세인 영국 지성인. 그의 글은 영락 없이 이 모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런 연상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잘 알지만 - 이런 연상은 BTS에 열광하는 외국인들이 한국 젊은 친구들은 모드 BTS처럼 생기거나 행동하겠거니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 특히나 그의 글에서 언급되는 인문학적 지식들은 그 연상을 더욱 굳히게 합니다. 소설가로서 많은 소설을 남겼지만, 그의 글쓰기 이력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 물론 일부 TV 평론을 쓰기도 했지만 - 바로 미술 에세이를 썼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책입니다.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이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소설에서 반스의 글에 반해 있던 차라 책 표지의 선정적인 마케팅에서 눈을 돌리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런 미술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반스 뿐이다."
당연히 바로 구입을 해 버렸습니다. 사실을 말하건대, 저는 미술, 특히 명화를 무척 좋아라 해서, 명화관련 서적을 꽤나 많이 봤습니다. 전시회도 상당히 많이 가 봤구요. 좀더 치기어린 나이 때에는 저의 전문 분야의 하나를 "명화 들여다보기"로 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봤을 정도니까요. 물론 현실에 치이다보니, 그 작은 소망도 차츰 옅어져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반스 덕분에 - 덕분이 맞습니다, 왜냐면 반스가 아니었으면 명화 관련 서적은 요새 저의 관심사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거든요^^ 요새의 관심사는 뭐냐구요? 돈? (하하) - 오랜만에 명화에 대해 들여다보고, 대가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시 반스 답습니다. 고작 서문에서 반스에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압도적이라고 할까요?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 금칠한 액자 속의 여성 누드 유화. 그것은 아마도 19세기의 어느 잘 알려지지 않은 원화를 옮긴, 역시 잘 알려지지않은 모작이었으리라. 부모님이 우리가 살던 런던 교외의 경매에 가서 구매한 것인데, 내가 그 그림을 기억하는 주된 이유는 그게 전혀 에로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당시 발가벗은 여자들을 묘사한 대부분의 그림들은 나의 신체에 건강의 증거라고 여겨지는 영향을 주었건만, 그 그림은 도무지 에로틱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예술의 역할은 그런 것인가 싶었다. 그러니까, 엄숙미로 삶의 흥분을 제거하는 것. p.9~10
너무 웃기지 않습니까? 저는 몇 페이지 넘기지 않고도 반스의 빼어난 - 타고 났는지는 제가 그의 데뷔작인 "메트로랜드"를 이제 시작하려고 하는데, 다 읽고 나서 리뷰해보겠습니다 - 위트는 빛을 발합니다. 공감이라고 하죠? 사실 유럽의 유명한 명화들은 죄다 다 여인들이 발가벗고 있습니다. 프랑스혁명에서 전투에 뛰어든 그 여인 - 아마 다들 한번쯤은 보셨을 겁니다, 아래 그림입니다 - 조차도 전투 중인데, 당최 왜......
많은 명화 관련 서적은 우리에게 많은 지식을 전달해 주려고 합니다. 네, 당연한 얘기를 왜 하냐구요? 저는 사실 약간 삐딱한 기질이 있어서, 미술 전공한 사람들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들이 정말로, 진실로 저 작품을 그렸을 때의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영화를 볼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잡지라도 하나 볼라치면 같은 영화를 본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난도질을 해 놓는 영화평론을 보면, 혀가 내두러질 정도입니다. 읽으면서 정말 영화감독이 이렇게까지나 생각하고 찍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의 글들을 보면 - 이런 말 해서 정말 죄송스럽지만 - 가끔 혐오스럽기까지 합니다. 물론 일찌감치 그 부분은 제 나름대로 이렇게 정리를 했습니다. 영화평론도 하나의 산업이다. 영화에 기생하는 주종관계가 아니라, 이미 그 종을 넘어서, 평론이 하나의 거대담론이 되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어떤 영화가 나와도 그 담론 내에서 해석을 하고 만다는 말입니다. 이걸 철학적으로 말하면 구조주의적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늘 어떤 시대, 어떤 지역, 어떤 사회집단에 속해 있으면 그 조건이 우리의 견해나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을 기본적으로 결정한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만큼 자유롭거나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자기가 속한 사회집단이 수용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집단이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애초부터 우리의 시야에 들어올 일이 없고, 우리의 감수성과 부딪치거나 우리가 하는 사색의 주체가 될 일도 없다. -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p.17
잠시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습니다. 이 책과 같이 동시에 읽고 있다보니, 연관지어 생각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다시 반스로 돌아가면, 그가 일반 대중의 시선에서 서술한 이 부분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 루브르 미술관에도 분명히 가봤을 테지만, 정작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곳은 크고, 어둡고, 인기 없는 어떤 다른 미술관이었다. 아마 거기엔 관람객이 나뿐이라.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게 하는 모방 압력이 없기 때문이었을 이다. 그곳은 생라자르역 근방의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이었다. p.11
모든 문장이 마음에 쏙 들었지만, 특히나 "루브르 미술관에도 분명히 가봤을 테지만"이라는 부분이 깊이 뇌리에 박혔습니다. 우리는 프랑스에 가면 절대 빠지지 않는 여행코스로 루브르 미술관을 넣습니다. 머스트 아이템인 셈입니다. 정작 그 명소에는 5분도 채 있지 않으면서, 이동시간에 하루 대다수의 시간을 허비하면서도 언제 또 오겠어? 라는 심산으로 패키지에 모든 명소를 넣는 심정도 저는 이해합니다. 제가 그렇게 다녀왔으니까요. 7여년 전에 다녀왔는데, 아직도 그 재기 넘치는 가이드 아저씨의 말이 기억이 납니다.
"왔느라, 보았노라, (사진) 찍었노라! 자, 사진만! 사진만! 찍고 바로 이동합니다!"
그렇게 진실로 밀라노에 5분 있다가 왔지만, 어디 가서 저는 밀라노 다녀왔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무튼 우리는 이렇게 "권위"라는 것에 사로 잡혀 삽니다. 루브르는 가봐야 하는 곳.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모든 작품들이 뛰어난 작품일까요? 통.념.적.으로는 맞습니다. 하지만 모든 작품이 뛰어나다고 스스로에게 세뇌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리 맛이 좋은 음식점에 가도 모든 메뉴가 우리의 입맛에 맞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유독 명화라는 권위 앞에서는 숭고해져야만 할까요? 사실 제가 기존의 명화관련 서적에서 느낀 점이 그거였습니다. 미술을 전공한 이들이 배웠던 지식을 그대로 우리에게 다분히 폭력적으로 주입하고 - 알아듣기 쉽게냐 그렇지 않냐의 차이가 있을 뿐 - 있었습니다. 근데 반스는 처음부터 반기를 드는 셈입니다.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게 하는 모방 압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 부분은 정말 압권이지 않습니까? 아까 제가 잠깐 샛길로 빠졌지만, 구조주의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가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걸 이렇게 운치 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직 책의 절반밖에 읽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반부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오롯이 저.장.해 놓고 싶은 마음에 리뷰를 먼저 작성했는데, 서문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네요(하하). 그만큼 반스의 감성에 절대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일 겁니다.
다음 리뷰도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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