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 리뷰/김훈

감흥 없는 글들만 읽고 있는 당신이라면? - 김훈의 "남한산성"

by 북노마드 2021. 5. 2.
728x90
반응형

남한산성.

출처 : https://blog.naver.com/rani4242/90184390409

사놓은지 오래 되었다. 역사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 원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 깊이는 없지만 기초교육과 TV 드라마 덕분에 얕게나마 내용을 아는 역사 소설은 더 싫어한다 - 책만큼은 충동구매를 하는 버릇 탓에 - 아마도 곁다리로 - 사들였던 책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훈 작가의 "연필로 쓰기", "자전거 여행" 등을 같이 사들였던 듯싶다.

어린 조카가 그림연습을 한다고 볼펜으로 표지를 헤집어 놓아서 김훈 작가의 얼굴에 여러 날선 자욱이 져 - 송구스러운 탓인지, 낡은 책내음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과 달리 새 책이 아니면 손이 잘 가지 않는 (책에만 있는 듯한) 결벽증 탓인지 - 왠지 더욱 손이 가지 않았던 찰나에,

김훈 작가의 판타지 소설 - 그가 태어나 처음으로 낸 판타지다 -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을 읽어내고, 겨우 - 충돌질 덕택에 - 다시 펼쳐냈다.

나는 김훈 작가의 문장 하나하나가 주는 쾌감이 좋다.

 

적절히 수분을 머금은 양배추를 와삭와삭 베어먹는 기분이 든달까.

문장의 힘이 강하여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역사 속의 - 치욕스런 - 장면을 빼어나게 잘 묘사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남한산성을 접고, 김훈 작가의 "흑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달 너머로 달리는 말, 남한산성에서 느꼈던 날카로움이 조금은 무뎌진 느낌이다. 그의 문장이 무르익기 전이었던 탓일까. 행여나 싶어 찾아봤더니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2020년 6월, 남한산성은 2007년 4월, 흑산은 2011년 11월에 각각 출간되었으니, 내 스스로의 감수성이 둔감해진 탓이리라.

# 이 배요!

조선 왕이 다시 절을 올렸다. 기녀들이 손을 잡고 펼치고 좁히며 원무를 추었다. 풍악이 자진모리로 바뀌었다. 춤추는 기녀들의 동작이 빨라졌다. 속곳이 펄럭이고 머리채가 흔들렸다. 다시 홍이포가 터지고 함성이 일었다. 조선 왕이 삼배를 마쳤다. 칸이 조선 왕을 가까이 불렀다. 조선 왕은 양쪽으로 청의 군장들이 도열한 계단을 따라 구층 단으로 올라갔다. 세자가 따랐다. 조선 왕이 칠층을 지날 때, 강화에서 끌려온 사녀들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울음을 참았다. - 남한산성 p.355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데, 이렇다 할 감흥이 오지 않는 문장들만 늘상 만나고 있는 당신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