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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리뷰/김훈

Into the Book: "흑산" - 접속사 없는 그의 문장, 김훈 작가의 피비린내 나는 소설

by 북노마드 2021.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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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작년 말 '달 너머로 달리는 말'부터 시작해서 '남한산성', 그리고 '흑산'까지. 김훈 작가의 세번째 소설이다. 매 작품마다 놀라는 것은 그에게는 접속사가 없다. '그리고' '그러나' '그런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러면서도 끊김 없는 문장을 짓는 것만으로도 글쟁이로 살아온 연륜이 드러난다. 그의 소설들은 거즘 다 읽어내는게 새해 목표다.

천주교 박해의 이야기다. 유달리 역사에 약하고, 초등학생도 외운다는 태종태세문단세~(*맞나? - 찾아보니 태정태세문산세가 맞단다)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역사 문외한이라 조선의 어떤 시기에 이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꿰매지는 못하지만, 실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김훈 작가의 상상을 덧입힌 소설이란다.

역사지식의 짧음을 그의 후기와 책 뒤의 연대기로 보강하자면 140여 년 전의 이야기다.

# 140여 년 전에 무너져가는 나라의 정치권력은 이 봉우리에서 '사학(邪學)의 무리'를 목 자르고 그 시체를 강물에 던졌다. 죽임을 당한 자들이 1만명이 넘었다. 서쪽에서 낯선 시간이 거슬러 올라오던 한강은 피로 씻기었고 봉우리의 이름은 절두산으로 바뀌었다. (중략) 자유로를 따라서 서울을 드나들 때마다, 이 한 줌의 흙더미는 나의 일상을 심하게 압박하였다. 이 소설은 그 억압과 부자유의 소산이다. (중략)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서 물고기를 들여다보다가 죽은 유자의 삶과 꿈, 희망과 좌절을 생각했다. 그 바다의 넓이와 거리가 내 생각을 가로막았고 나는 그 격절의 벽에 내 말들을 쏘아댔다. 새로운 삶을 증언하면서 죽임을 당한 자들이나 돌아서서 현세의 자리로 돌아온 자들이나, 누구도 삶을 단념할 수는 없다. (중략) 나는 말이나 글로써 정의를 다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다만 인간의 고통과 슬픔과 소망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 흑산 후기 中 p.385~387

# 책의 시대적 배경 : 정/순조 시절 (*아래는 책 맨 뒤 연대기 참조)

- 주인공이라고 할 법한 황사영(정약현의 사위, 정약전의 조카사위), 정약전(정약현의 제(弟))의 생애가 걸쳐져 있음.

- 1644년(인조 22) 청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 세자가 예수회 샬 폰 벨 신부와 친교를 맺음

- 1779년(정조3) 권철신, 정약전, 이벽 등이 경기도 광주 주어사에서 천주교 교리를 토론함

- 1785년(정조9) 1월 이승훈,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삼형제, 권일신 부자 등 10여 명이 집회 중 이벽의 교설을 듣다가 추조(형조) 관리들에게 발각됨(추조적발사건). 이 일로 천주교의 존재가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언급됨

- 1797년(정조21) 6월 승지 정약용이 정조에게 서양싀 사설에 빠져들었던 일을 뉘우치는 상소를 올림.

- 1799년(정조23) 정약종이 천주교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 저술

- 1801년(순조1) 1월 천주교 신자 최필공이 체포됨. 2월 대왕대비 정순왕후 김씨가 천주교 신자들ㅇ르 역적으로 다스리고 오가작통법을 시행하여 신자들을 색출, 처벌하라는 금교령을 내림(신유박해). 영이 내려진지 9일 만에 교리서와 성물을 담은 정약종의 고리짝이 발각되면서 경기도와 충청도로 박해가 확산됨. 4월 정약종 참수, 정약전은 전라도 완도, 정약용은 경상도 장기로 유배됨. 11월 황사영이 배론에서 체포되고, 정약전과 정약용이 불려 올라와 심문을 받음. 12월 황사영, 서수문 밖에서 능지처참됨.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됨.

- 1800년(정조24) 6월 정조 승하

- 1810년(순조10) 9월 정약용이 강진에서 향리로 방면됨

- 1816년(순조16) 정약전, 흑산도에서 죽음

- 1836년(현종2) 1월 모방 신부, 서양 선교사로서 최초로 의주 변문을 거쳐 조선 입국

- 1845년(현종11) 8월 김대건, 조선인 최초로 사제 서품. 이듬해 서해를 통한 선교사 입국로를 탐색하던 김대건 신부가 순위도에서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됨.

# 책 속에 주인공 정약전은 실존 인물로, 우리가 잘 아는 정약용과 형제관계이다. 정약용 또한 한때 천주교 신자였다고 한다. (4형제 중 정약전이 둘째 아들이고, 정약용이 넷째 아들)

- 정약현(첫째 아들) : 첫째 부인 의령 남씨 소생

- 정약전(둘째 아들) : 둘째 부인 해남 윤씨 소생(신유박해로 귀양 간 후 흑산도에서 사망)

- 정약종(셋째 아들) : 둘째 부인 해남 윤씨 소생(신유박해 때 아들 철상과 함께 순교)

- 정약용(넷째 아들) : 둘째 부인 해남 윤씨 소생(신유박해로 귀양살이를 하면서 저술활동을 하다가 마재로 돌아와서 만년을 지내다가 중국인 유방제 신부에게 병자성세를 받고 복권되지 않은 상태로 7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남)

기껏 140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사학(邪學)은 정학(正學)으로 자리잡았다. 당시 사학(邪學)에 빠진 이들의 마음이 글 속에 간간이 비친다.

# 세상에는 근본이 있다. 그것은 선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임금보다 더 높은 심판자가 있다. 그래서 다스림은 선해야 하고, 선하지 않은 다스림은 지금 당장 멸해야 한다.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 죄를 뉘우쳐라. 참된 뉘우침으로 삶을 깨끗이 하라. (중략)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지만, 마노리에게는 그 뜻이 분명하고 손에 잡힐 듯이 확실했다. 마노리는 그 분명함에 놀랐다. 황사영의 말을 듣기전부터 마노리는 그 말ㅇ르 알고 잇었던 것 같았다. 알고 있었지만, 그 앎이 드러나지 않고 몸속 깊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던 것 같았다. p.174

사학(邪學)이라 규정한 자들의 마음도 보인다.

# 이한직은 정약종의 문하에 드나들면서 천주교를 배웠다. 그 교리는 아득히 멀고 모호한 것들을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끌어다주면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지만, 살아 있는 동안을 가볍이 알고 조상 제상을 금함으로써 근본을 부수는 그 겁 없음이 이한직은 겁났다. p.45 ~ 46

종교만이 아니라 사피엔스가 만들어낸 관념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다만 그게 피에서 물질로 변했을 뿐일지도 모른다.(*지구 한켠에서는 말그대로 아직도 피가 낭자하다)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구시대는 지키려 하지만 결국 세상은 변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인류는 역병을 이겨내고 반드시 일상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얼마 전 찾은 영화관에서 널찍한 극장 안에 듬성듬성 자리잡은 열명 남짓의 사람들을 보고,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길인가, 싶었다. 흑산을 보고, 천주교 박해로 피로 흐른 목숨이 안타까웠다기보다는 두려웠다. 몇 키로도 안되는 두개골로 어찌 세상을 읽어내겠냐만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삶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구나 저어되었다.

잊혀져 가는 지난한 역사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 수많은 역사자료들을 찾아내고 읽어내고, 빈 공간은 촘촘한 문장력으로 채워내는 노작가의 고뇌가 느껴져 아직까지도 등골이 서늘하다.

노작가의 익어가는 문장에 웃고, 천주교 박해의 역사의 현장에 울고 싶은 당신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ps. 이 영화를 모티브로 해서 영화가 개봉되었네요(바로 어제인 3월 31일). 왕의 남자, 사도 등으로 유명한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입니다.  흑산에 들어간 정약전과 제가 리뷰에는 거의 남기지 않았던 흑산에서 글을 가리키던 젊은 사내와의 에피소드를 극대화시켜서 - 실제 소설에서는 둘의 에피소드는 그렇게 많지는 않음 - 만든 모양입니다. 소설과는 분명 다른 내용으로 전개시킨 것 같지만, 먼저 소설을 읽어서인지 반가운 마음에 빨리 보고 싶네요^^

 

▶ 김훈 작가의 극사실적인 현대소설이 궁금하시다면?

 

공터에서 ( feat. 김훈작가가 바라본 현실)

김훈 작가의 - 내가 읽은 - 네번째 작품이다.​달 너머로 달리는 달, 남한산성, 흑산, 그리고 이 작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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