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그대에게
지금 강박관념이 생기신다구요? 공부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심지어 명상도 해 보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얼리버드 생활도 해 보지만, 잘 하고 있는지 모르시겠다구요?
새벽에 너무 일찍 일어났습니다. 간만에 좋은 주말을 보내 다가오는 월요일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것을 즐기지만, 요사이 새로 생긴 버릇이 있습니다. 요새 같은 인터넷 세상에 철지난, 구식의 방법 같지만, 연습장에 글을 쓰는 것입니다. 어떤 글이냐구요? 그냥 결심 같은거, 타임 테이블 같은거, 심지어 오늘 와닿은 영어책 한 표현도 좋습니다. 뭐, 최근에는 책의 구절구절을 복기하는데도 씁니다.
어떨 때는 비효율적이라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연필로 흘겨 쓴 글을 못 알아볼 때도 있지만, 이걸 어찌됐든 디지털화하지 않으면 대중에게 선보이는 것은 요원하니까요. 어찌됐든 저도 소통이 있는 글을 지향하니까요. 저만의 일기가 아니라.
요새는 PDF를 워드나 다른 문서로 변환해 주는 서비스도 있다던데, 이렇게 막 흘겨 쓴 글도 사진으로 찍어서 바로 변환해줄 수 있나 싶네요. 생각난 김에 한번 해 볼까요. (10분 뒤......) 안 되네요.
* 이 글은 실제 연필로 쓴 글을 디지털화한 것 뿐임을 밝힙니다.
무튼 오늘 아침에 작년에 기록된 꿈 목록이 궁금해서 지난 연습장을 뒤적여봤습니다. 참 많은 걸 했더라구요. 나름 치열하게. 이런 생각도 했었구나 하면서요. 치열하게 사는 것. 즉, 강박관념이 있는 삶이 사실은 잘 살고 있는 건데, 열심히 살고 있는 건데, 우리의 삶에 어쩌면 가장 충실하게 사는 것인데 우리 자신만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새벽입니다. - 2019년 9월 30일 새벽 4시 12분
문장수집의 변(辯)
예전에, 어렸을 적, 아니 최근까지도 나의 글쓰기 방식, 특히 독서리뷰라든지 영화리뷰는 감성의 모음집 같은 느낌이었다. 감성의 모음집? 무슨 소리냐면, 나는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나의 어린 시절, 경험담, 아니면 그 책이 나에게 주는 묵직한 울림 같은 것을 써내려가는 것이 좋았다. 왜냐면, 사실 책의 요약은 다른 블로거들도 무쟈게 많이 하기 때문이다. 굳이 나도 그들 중 한 명이 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샛말로 갬성(?)이라고 하나? 뭐 나만의 갬성이 아니면 굳이 또 하나의 독서리뷰를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강했던 듯 싶다.
물론 영화리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의 영화리뷰는 영화를 안 보신 분들도 안심하고 읽을 수 있다. 왜냐면, 스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물론 모든 리뷰가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나도 혹시나 불안하신 분들을 위해, 제목에 "스포없음"을 붙여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나는 영화 한 장면 한 장면이 나에게 줬던 그 울림을 오롯이 나만의 필체로 전달하고 싶었다. 또 그것이 차별화된(사실 딱히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런데, '차별화된'이란 말은 정말 싫다. 경영학 서적에서나 나오는 인간미 없는 매정한 요따위 단어는 늘 나에게 낯설다) 글쓰기 방식이라고 오랫동안 믿어 왔었던 것 같다.
그러다 최근에 연습장에,읽다가 좋아하는 글귀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나는 당최 악필이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악필이 된 얘기를 하자면, 또 두세 페이지 써야 하니 넘어가겠다). 거창하게 얘기하면 문장수집인데, 사실 처음에는 그럴 의도가 젼혀 없었다.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 대한민국 평균(내가 대한민국 평균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편인데, 이 자리를 빌어서 사죄한다. 너무 디스하는 것 같아서;;)보다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집에 꽂혀 있는 수백권의 책을 읽고도 나는 변화가 없었고,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게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게 바로 문장수집이다.
오늘 김훈 작가의 "연필로 쓰기"에서 수집한 문장 몇 개를 공유해 보겠다.
너무 늦기는 했지만, 나이를 먹으니까 자신을 옥죄던 자의식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나는 흐리멍덩해지고, 또 편안해진다. 이것은 늙기의 기쁨이다. 늙니는 동사의 세계라기보다는 형용사의 세계이다. (중략) 자의식이 물러서야 세상이 보이는데, ...... 너무 늦었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다. 이것은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의 세계이다. p.74
아이가 아프니까 젊은 엄마들은 얼굴빛이 초조하다. p.74~75
젊은 엄마들은 입술로 아이의 병을 덮어준다. 아이는 포대기에 싸여 있는데, 아프지만 엄마가 있으니까 불안한 기색이 없다. p.75
아이가 아프고 젊은 엄마가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누항의 일상이 이처럼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나는 70살까지 산 것이다. 이것을 알았으니 70년 세월은 헛되지 않았구나 싶었다. p.75
나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자가 되고, 읽는 자가 아니라 들여다보는 자가 되려 한다. 나는 읽은 책을 끌어다대며 중언부언하는 자들은 멀리하려 한다. 나는 글자보다는 사람과 사물을 들여다보고, 가까운 것들을 가까이 하려 한다. p.75
멋진 말들이 춤을 추지만, 개 중에서도 '젊은 엄마들은 입술로 아이의 병을 덮어준다' 라는 표현. 참 멋있지 않는가? 아파서 연신 보채는 아이에게, 너무 아파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는 울음마저 목에 걸려 있는데, 그 아이의 볼, 이마, 그리고 입술에 연신 뽀뽀를 하며 아픔을 달래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저 단촐한 문장 하나로 눈에 선하게 그려지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골골했던 나의 소년 시절이 떠오른다. 툭하면 체했던 나. 나의 등뒤를 어머니는 늘 손으로 정성스레 매만져줬다. 툭하면 배앓이를 했던 나. 나의 배를 어머니는 늘 손으로 정성스레 매만져 줬다.
젊은 엄마는 손으로 체한 소년의 등과 배를 따스히 덮어준다.
한 번 패러디해 봤다. 그의 문장을 더 연구하고 더 수집해 봐야겠다. - 2019년 10월 1일 새벽 5시
'자기계발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원짜리를 다시 본다. (0) | 2019.10.11 |
---|---|
창의적인 사람들이 가진 공통적인 버릇 (0) | 2019.10.05 |
성공하고 싶으면, 글을 많이 쓰라면서요? 근데 글이 잘 안 써진다구요? (0) | 2019.10.01 |
꿈은 포스트잇에 적으세요. (0) | 2019.09.28 |
꿈은 궁뎅이가 만들어줍니다. (0) | 2019.09.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