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얇은 책입니다. 그러니까 보통 책의 3분의 1 정도 되는 두께에, 책을 펼쳐보면 글씨도 큰 데다 게다가 공백이 아주 많습니다.
그 이유를 무라카미 하루키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바로 일을 마치고 키친 테이블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썼다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가로 전업을 하기 이전에 작은 재즈바를 운영했고, 문을 닫고 토막토막 시간에 글을 썼다고 합니다. 그것도 어느 날 야구를 보러 갔다가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져서. 그 글이 바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이고, 그의 데뷔작입니다.
그는 이 작품으로 군조신인상을 수상합니다. 우리로 따지면 정식으로 문학계에 등단한 셈입니다.
하루키의 전작, 그러니까 <해변의 카프카>, <스푸트니크의 연인들>, <상실의 시대>를 무척이나 인상 깊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는 처음에는 잘 읽혔던 것은 사실입니다.
일단 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주인공 스스로 이 책을 쓴다, 라고 알리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뭐랄까,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이 글을 쓰는 것을 철저히 숨겨야 독자들이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는 기분이랄까요. 저 혼자만의 선호겠지만, 거기서부터 턱 하니 막혔습니다.
# 이제 나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물론 문제는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았으며, 얘기를 끝낸 시점에서도 어쩌면 사태는 똑같을지도 모른다. 결국 글을 쓴다는 건 자기 요양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 요양을 위한 사소한 시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략) 내게 글을 쓰는 일은 몹시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한 달 동안 한 줄도 쓰지 못할 때가 있는가 하면, 사흘 밤낮을 계속 썼는데 그것이 모두 엉뚱한 내용인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일을 즐거운 작업이기도 하다. 삶이 힘든 것에 비하면 글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너무나도 간단하기 때문이다.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中
# 더 읽고 싶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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