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이면서 번역가입니다. 번역을 일종의 유희, 즉 소설 창작을 하지 않는 시간에 하는 취미 정도로 일켣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번역과 소설 창작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 번역을 하면서, 다양한 선배 작가들의 '구조'를 공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하루키 스타일'을 만들 수 있었다고 여러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또 그에게 번역이란 자신의 내면으로만 파고드는 소설을 창작하는 일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일종의 '번역 치유'로도 기능하고 있습니다. - 하루키 2006년 '위대한 개츠비' 번역 기념 이메일 인터뷰 中 (출처 : https://finding-haruki.com/759)
그래서 저도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아니라도 다른 영미권 작가들의 책을 제 나름대로 번역을 해 보는 시도를 해 보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제 나름대로의 소설 창작 스타일 - 제 본명을 언급할 수 없기에 블로그 필명으로 "북노마드 스타일" - 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참고로 우리에게는 낯선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 - 참고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입니다 - 가 그의 에세이 "읽는 인간"에서 프랑스 문학을 일본어로 번안하면서 그의 소설쓰기가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도 번안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저번시간에 이어 우리에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영어 원제 "Fifty Shades of Grey")를 번역해 보겠습니다.
(*작가인 E.L. James는 2016년 포브스가 조사한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작가 9위에 링크되어 있습니다.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Kate is huddled on the couch in the living room.
"Ana, I'm sorry. It took me nine months to get this interview. It will take another six to reschedule, and we'll both have graduated by then. As the editor, I can't blow this off. Please," Kate begs me in her rasping, sore throat voice. How does she do it Even ill she looks gamine and gorgeous, strawberry blonde hair in place and green eyes bright, although now red-rimmed and runny. I ignore my pang of unwelcome sympathy.
"Of course I'll go Kate. You should get back to bed. Would you like some Nyquil or Tylenol?"
"Nyquil, please. Here are the questions and my mini-disc recorder. Just press record here. Make notes, I'll transcribe it all."
"I know nothing about him," I murmur, trying and failing to suppress my rising panic.
"The questions will see you through. Go. It's a long drive. I don't want you to be late."
케이트는 거실 소파 위에 찰싹 달라붙어 끙끙 앓고 있었다.
"아나, 진짜 미안해. 근데 이 인터뷰 따낼려고 아홉달이나 고생했어. 다시 잡으려면 적어도 여섯달은 기다려야 할거야. 그땐 알다시피 우린 졸업하고 여기 없을거야. 편집자로서 이 일생일대의 기회를 날릴 수 없어. 케이트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나에게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아픈데도 그녀는 우아해 보였고, 딸기빛이 도는 금발의 머리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으며, 초록색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나는 원치 않는 동정심을 억눌렀다.
"걱정마, 갈 거야. 그러니까 잠이나 자. 나이퀼? 타이레놀?"
"나이퀼. 여기 질문지와 소형 녹음기. 이걸 누르면 녹음 돼. 노트하고, 타이핑은 내가 할게."
"근데 나 그 사람에 대해 단 1%도 아는 게 없어." 나는 웅얼거리려다 끝내 끓어오르는 당혹감에 말로 내뱉고 말았다.
"이 질문지를 보면 어느 정도 파악이 될거야. 일단 출발해. 갈 길이 멀어. 늦으면 안 되니까."
>>> 정확한 뉘앙스를 파악하기 어려운 문장들이 좀 있습니다. 이를테면, I ignore my pang of unwelcome sympathy, I murmur, trying and failing to suppress my rising panic.이런 문장들은 앞뒤 문맥을 살펴도 정확히 와 닿지가 않습니다.
>>> 맨 마지막 문장인 "I don't want you to be late" 이런 문장들은 직역으로 하면 그 뜻이 와 닿지가 않아 꽤나 변형하였습니다. "늦으면 안 되니까"로 말입니다.
>>> 계속 하다보니, 번역의 세계는 하나의 세상 위에 또 다른 세상을 세우는 일 같습니다. 지금은 제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취미(?)로 가볍게 하고 있지만, 만약 제가 돈을 받고 전문 번역을 한다고 하면 원문의 뉘앙스를 어떻게 살려야 할지 - 지금은 내가 좋아하고 자주 사용하는 어휘 위주로, 즉 거의 바로 떠오르는 말들 위주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만 - 꽤나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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