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 리뷰

외로운 자여! 인간에 대한 사랑, 연민이란 무엇입니까? - 용의자 X의 헌신

by 북노마드 2019. 10. 16.
728x90
반응형

오늘은 일본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Higashino Keigo)"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소알못인 저지만, 모르긴 몰라도 한국인이 사랑한 일본 작가 순위에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와 더불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꼽히는 작가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말씀드렸지만, 소알못인 저로서는 시작할 이유가 없는 작가였습니다. (*사실 하루키도 그의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제외하고는 거의 안 읽어봤으니까요. 고백컨대 중고딩 시절 책을 좋아했던 누이의 서재에 꽂혀 있던 "상실의 시대". ** 호기심이 왕성했던 그 시절에 그러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었던 기억만이 남아 있네요...^^;)

무튼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에서 크리에이티브(Creative)의 첫번째 법칙, 소비의 법칙을 따르기 위해 소설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라고 결심하였습니다. 소설은 한 번 써 보고 싶은데, 그리고 쓰기 시작했는데, 당최 진도가 안 나가서 남들은 어떻게 쓰나 궁금하기도 하던 찰나에 마침 까마득한 후배녀석에게 우연찮게 이 책을 추천 받았습니다.

1958년생, 올해 나이 62세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2005년도에 썼던 책. 그의 나이 48세 때 펴냈던 책입니다. 그는 이 책으로 2006년도에 제 134회 나오키상과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합니다. 1985년도 소설 '방과후'로 데뷔를 했다고 하니, 28세에 데뷔를 하고 무려 20년이 흐른 뒤에 써 낸 책인 셈입니다.

무튼 후배녀석은 게이고의 광팬이더군요. 거의 모든 소설을 다 사서 읽어서, 몇 해 전 그걸 중고서점에 넘길 때의 그 아픔을 저에게 얘기하더군요. 그 친구가 지금 20대 중반이니, 모르긴 몰라도 그의 10~20대를 지배한 소설이라는 겁니다. '요샛 것들은'이라는 표현으로 젊은 세대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표현들 하는데, 과연 그 요샛 것들의 마음까지 훔친 소설은 어떤 소설일까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인터넷 주문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게 너무 궁금해 퇴근후에 바로 서점에 가서 구입해서, 그 날 당장 읽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이미 책 앞 뒤 표지에 소설의 내용이 다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떡하니

"이시가미를 추적하던 유가와는 어느 순간 상상조차 할 수 없을만큼 끔찍한 이시가미의 트릭을 눈치채고 경악하는 한편 친구에 대한 깊은 연민과 고민에 빠지게 된다."

총 447페이지로 구성된 이 소설은 350페이지까지, 즉 책의 약 78%를 저기 책 뒷페이지에 나온 얘기를 펼쳐놓은 겁니다. 그래서 사실 책을 산지 일주일이 지나고 완독했습니다. 78%동안 다 아는 얘기를 하니까, 쉬이 몰입이 되지 않더군요. 솔직히 페이지수만 많지 글자체도 크고, 줄간격도 넓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쉬이 읽혀서 마음만 먹으면 두세시간이면 뚝딱 읽어낼 수 있는 분량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소설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소설 쓰겠다는 양반이, 소설 안 좋아한다니, 아이러니죠?^^;). 간만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더욱 절실히 느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실용적인 독서를 지향하기 때문에, 소설을 별로 안 좋아하더군요. 이른바 '성장증후군? 발전증후군?' 같은게 제 안에 있더군요. 인문학 서적이라고 하면 사실 그 역사적 지식이라든지, 명화에 대한 배경지식들이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활용이 가능할 것 같은데, 작가가 죄다 지어낸 허구의 세계에서는 제가 배울 실용적인 지식이 없다라는 것이 저의 지론인 셈인거죠.

그런 저에게 외국소설은 더욱 눈밖에 난 존재입니다. 왜냐면 한국소설이야 좋은 문장, 좋은 표현이라도 발견해서 저의 문장력에 도움이라도 될 것 같은데, 어쩐지 외국소설들의 번안된 표현들은 (어렸을 적 조금 읽어봤지만) 좀처럼 저의 마음을 유혹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자리를 번역가 분들에게는 사죄를 드립니다.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취향임을 존중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 그래도 딱 한 문장 제가 필사해놨네요.

"그때 자네가 말했어. 노숙자들을 보고, 그들은 시계처럼 정확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기억나?"

"그래. 기억나. 그랬더니, 인간이 시계에서 해방되면 오히려 더 그렇게 되는 법이라고 자네가 말했지."     p.329

시계에서 해방된다라, 꽤 괜찮은 말이다라는 생각을 했슴죠. 더 성실히, 열심히, 충실히 인생을 살기 위해 우리는 더욱 시계에 집착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특히는 요새의 저는 더욱 더. 시계에서 해방되면 인간은 더 정확히 살아간다는 말이 와 닿더군요.

무튼 22%의 반전은 꽤나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 이래서 추리소설을 읽는구나. 추리소설이라고는 사실 셜록 홈즈 밖에 모르는 저지만, 추리 소설의 매력이 마지막 22%에 있구나. 이를 위해 그 두꺼운 시간 동안 복선을 차곡차곡 쌓아 가는구나.

사실 책의 구성은 단순합니다.

천재 수학자인 이시가미, 사건의 중심에 있는 모녀, 그리고 천재물리학자 유가와.

천재 수학자인 이시가미가 왜 그들을 도와줬는지, 그 동기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사건의 진실. 추리소설의 묘미는 바로 그 범행동기와 사건의 진실, 이 두 가지를 독자들이 궁금하게 만드는 기술에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책 표지의 책띠를 보면 사실 이시기미라는 천재 수학자의 동기를 살짝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동기는 22%에 나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외로운 자여! 인간에 대한 사랑, 연민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외로움은 사랑과 연민을 갈구하게 한다. 뻔한 말이지만, 이토록 외로운 말이 있습니까?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은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소설이었습니다.

아직 안 읽어보신 분이라면, 지금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세요!

ps. 책을 다 읽고 개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소설가에게 관심이 생겼습니다. 이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글을 쓸까?

"히가시노 게이고 글쓰기"로 검색했더니, 이런 일화가 소개됩니다.

이것만으로 그의 든 독서이력과 글쓰기이력을 추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확실히 소설을 읽으면서 '전혀 부담이 없다. 쉬이 읽힌다. 이정도 문체(?)면 나도 쓰겠다(=이 말은 역으로 독자를 아주 배려했다는 의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저 글을 읽고 느꼈습니다)' 라고 느낀 이유가 저런 글쓰기 철학에서 연유했구나 라는 생각을 문득 해 봅니다.

어떻습니까? 책이라고는 쥐뿔 안 읽어본 내가 감히 글을? 소설을? 책만 펼치면 잠이 드는 내가?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더욱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써 있으면 안 잘텐데, 를 가장 잘 아는 당신이니까요^^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