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와 칸타의 장"은 판타지 소설입니다. 작가인 이영도씨는 판타지 문학계에서는 상당히 정평이 나 있다고 합니다.
몇 번 말씀드렸지만, 원래 소설은 잘 안 읽는 스타일이지만 - 소설 읽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기까지(*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정 맞을 각오로 솔직히;;) - 근래 들어 본의 아니게 소설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우는 나쓰메 소세끼의 소설도 상반기에는 3권(마음, 도련님, 태풍) 읽었습니다. 당연히 도대체 어떻게 쓰길래 그런 호(?)가 붙었을까 하는 다분히 실용적인 의도였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하루끼가 그의 자전적 에세이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얘기했던 부분이 공감이 갑니다.
# 자신의 머릿속에 어느 정도 윤곽이 선명한 메시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일일이 스토리로 치환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윤곽을 그대로 곧장 언어화하는 게 훨씬 더 빠르고, 또한 일반인들이 받아들이기도 훨씬 쉽겠지요. 소설이라는 형태로 전환하자면 반년씩이나 걸리는 메시지나 개념도 그걸 그대로 직접 표현하면 단 사흘 만에 언어화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마이크를 향해 생각나는 대로 말해버린다면 단 10분이면 끝날지도 모릅니다.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은 물론 그런 것도 가능합니다. 듣는 사람도 '아하, 그렇구나'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p.21
인류 평화는 중요하다, 가족간의 사랑은 중요하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등의 메시지를 말로 하면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소설가는 그걸 굳이 에둘러서 표현하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러기에 더 자주 멈칫해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해 보게 하는 좋은 장치(?)이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요사이 자주 듭니다.
10여년 전 쯤에 저보다 열살정도 많은 대학교 선배를 졸업후에 정말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형, 요새 뭐하고 지내세요?"
"엉? 요새 세계문학전집100 뽀개기 하고 있어."
"네? 왜 굳이..."
당최 쓸데 없는 짓을 하는 한가한 선배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제가 그 선배의 나이에 도달을 해 보니, 지금 제가 비슷한 짓을 하고 있더군요. 아마도 살다보니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제가) 갈구하는 어떤 것이 그 문학이라는 곳에 숨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랄까요?(*이것도 다분히 실용주의적이죠?^^) 나보다 한세기, 두세기, 그보다 훨씬 이전에 태어난 위대한 대문호들은 인생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라는 호기심. 이런 것 때문에 저도 같은 프로젝트를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찰나입니다.
그러면 현대문학은 제외냐고 물어보실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해서는 74세의 나이(1947년생)에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미국의 위대한 소설가 스티븐 킹이 그의 책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 형편없는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렇게 쓰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배운다. (중략) 한편, 좋은 책은 한창 배움의 길을 걷는 작가들에게 문체와 우아한 서술과 짜임새 있는 플롯을 가르쳐주며, 언제나 생생한 등장 인물들을 창조하고 진실만을 말하라고 가르친다. (중략) 한 번쯤 남의 글을 읽고 매료되지 못한 작가는 자기 글로 남들을 매료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 유혹하는 글쓰기 p.177~178
그러면서 본인은 독서 속도가 느린 편인데도 일년에 70~80권쯤 읽는다고 밝힙니다. 위대한 작품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지요? 결론은 현대소설도 가리지 않고 읽겠다는 겁니다.
아차차! 시하와 칸타의 장에 대해서는 언제 이야기 하냐구요?
결론을 얘기하자면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실은 지금 읽고 있는 톨스토이의 부활 보다도 더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로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정말 멋진 작품이겠다는 막연한 상상을 해 봤지만, 눈으로 읽기에는 조금 어려운 면이 있었습니다만,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책 뒷편의 작품해설에도 나와 있지만, 현실(사회)의 문제점과 부조리를 반영하고, 고발하는 작품들이 칭송받아 왔고, 환상을 기반으로 하는 판타지 문학은 오랫동안 사치와 공상, 현실도피로 손가락질 받아온 와중에 이영도 작가는 판타지 문학을 일군 1세대 작가라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기이한 판타지 영화에는 열광하면서, 왜 판타지 문학은 가치절하할까요?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짐짓 웃음을 지어보이면서 이영도 작가의 다른 작품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초반부에 독서노트를 잠깐 쓰다가 후반부는 이야기에 몰두하여 노트를 안 했지만, 초반부에 말씀드린 에둘러서 표현하기에 자주 멈춰서서 생각을 해 본다는 것에 대한 예시로 추가로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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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르긴은 잠깐이라기엔 좀 긴 시간 동안 멍하게 시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10대 인간에게 사랑의 묘약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요정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상하지 않아. 가지고 있다가 언제든 쓸 수 있어." p.52
▶ 처음으로 어? 재밌겠다고 느꼈다. 10대 소녀가 사랑의 묘약을 받게 되면서 펼쳐질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더 요상한 것은 10대 소녀가 아예 사랑의 묘약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않는 대목이었다. 나중에 사랑에 빠질려나? 비로소 소설에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 "사랑의 묘약인지 뭔지를 만들어. 팔수는 있겠지."
".....뭐?"
"팔 거라고. 인류는 멸망해도 바보는 멸망하지 않으니까." p.56
▶ 인상 깊은 말이다. 요새 주식에 꽂혀 있어서 그런지 바로 먼저 주식 관련 명언이 떠오른다. 주식시장에 바보가 많으면 폭락이 온다는 말. 무튼 인류가 다 망해도 어리석은 자들은 자신들이 멸망한지도 모른다는 말일 것이다. 사치와 탐욕에 눈이 멀면 이성은 마비되고 바보가 된다.
# 쇠락의 상징 같은 악취나 숨 막히는 먼지, 진득한 웅덩이 따위는 사실 활발한 생명 활동의 증거이다. (중략) 생명 활동의 기준에서 본다면 그런 것들은 쇠락은커녕 오히려 번성의 증거일 때가 많다. 사막이나 극지, 달 표면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그래서 그곳에는 황량하지만 지저분하지는 않다. p.57
▶ 더럽다고 피하지 마라. 냄새 난다고 욕하지 마라. 젊은 당신도 냄새 나는 존재이다. 어린 아이들에게도 냄새가 난다. 그런데 그 냄새를 악취라고 하지는 않는다. 노인들에게 나는 냄새는 악취로 취급한다. 어린이, 젊은이의 냄새는 생명의 냄새이고, 노인들의 냄새는 죽음의 냄새란 말인가? 모두다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더럽고, 냄새 나는 것을 사랑하라. 그것이 살아 있는 세상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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