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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리뷰

Into the Book: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by 북노마드 2020.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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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는 1946년생(올해 나이 74세) 영국 작가다. 그는 1980년, 그의 나이 34세에  "메트로랜드"라는 장편소설로 데뷔한다. 데뷔작으로 서머싯몸 상을 받았으니, 난 작가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작품이 2011년도에 나왔으니, 그의 나이 65세에 탈고한 셈이다. 작품 속에 그의 견해가 응축적으로 다분히 담겨 있는 표현이, 처음에는 거스르기도 했지만, 계속 읽다보니 일종의 연륜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어 묘한 끌림을 느꼈다.

연륜이라는 것이 와닿지 않을텐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인성의 깊이와 세월의 흐름은 비례하는 걸까? 소설에선 물론 그랬다. (중략) 어쩌면 인성이란 다소 시간이 지나서, 즉 이십대에서 삼십대 사이에 정점에 이른다는 점만 빼면, 지성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 시기가 지나면 우리는 그때까지 쌓은 소양에 여지없이 고착되고 만다. p.179~180

너는 나이를 거꾸로 먹냐? 이 말은 내 유년시절에는 아주 살벌한 욕지거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최고의 칭찬일 것이다. 나도 나이을 조금 더 먹으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나의 인성의 깊이는 2~3년전, 5년전, 10년전에 비해 더 깊어졌는가? 인정하기 싫지만 숫자만 더해졌다고 생각한다. 그 외면하고 싶은 진실은 예순을 넘긴 반스가 여실히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작품을 읽을 때 작가를 많이 보는 편이다. 특히 작가가 어느 시대에 살았으며, 이 작품을 몇 살에 썼느냐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범인인 우리마저도 나이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데, 작가라면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작품 속 주인공이 반스와 비슷한 연배에서 과거를 회상해서 그런지 작가 본인인지, 소설 속 주인공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순간들이 여러번 있었다.

결말을 향해가면서, 나는 반스의 데뷔작인, 즉 그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던 시절의 - 적어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작품을 쓰던 시절보다는 - 감성이 궁금해서 "메트로랜드"를 바로 읽어보고 싶었을 정도다. 찾아보니 1980년도에 나온 작품이라 이미 절판된 상태였고, 헌책방이 아니면 구할 길이 없었다. 일단 주문을 해 놓았다. 그 기다림이 너무나 설레는 지금이다.

사실 이 책은 반전이 있다라는 얘기를 이미 듣고 읽었던 터라, 읽는내내 상상할 수 있는 최대 반전을 궁리해 보았다. 연배가 있는 주인공이고, 소설 곳곳에서 "자.기. 보.존. 본.능."이라 일컫는 자기 편향적이고 작위적인 기억의 복기 등에서 나는 이것이 모두 잘못된 기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자기 편향적인 기억에 대해 반스는 이렇게 말한다.

# 시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마흔은 아무것도 아니야, 쉰 살은 돼야 인생의 절정을 맛보는 거지. 예순은 새로운 마은이야...... 시간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이 정도다. 객관적인 시간이 있다. 그기로 주관적인 시간도 있다. (중략) 이런 사적인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시간이며, 기억과 맺는 관계 속에서 측정될 수 있다. 그래서 이 기묘한 일이 일어났을 때 - 새로운 기억이 느닷없이 나를 엄습했을 때 - 는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강물이 역류한 것 같았다. p.210~211

소설을 읽으면서 - 특히 후반부를 소화하면서 -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려 망상과 실제를 혼란스러워하는 설경구가 오버랩되었다고 할까? 스포가 될 것 같아 밝힐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나의 상상은 틀렸다는 것이다.

책의 반전은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책 곳곳에 포진된 - 아마도 연륜으로 기인한 것 같은 -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시선, 반스 특유의 위트만으로도 충분히 이 책은 읽어볼만하고 소장할 만한 가치도 있다.

반스 특유의 위트는 책 속에 차고 넘쳐서 딱히 하나를 꼽을 수 없지만 - 지금 딱 눈에 들어오는 - 이를테면 이렇다.

# 아비의 의무를 다했고, 외동딸은 결혼이라는 한시적 피난처로 떠났다. 이제 할 일은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가진 재산을 잊지 않고 그 아이에게 남기는 것 뿐이다. 그리고 우리 부모보다 더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 가진 재산이 자식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시점에 맞춰 죽어주는 편이 더 좋다. 그것이 출발점이 되리라. p.178

솔직히 영어공부 끊은지 오래되어서 영어원서라는 것, 안 읽어본지 오래 되었는데, 어쩐지 이 책은 번역은 반역이라는 우스갯소리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번역이라는 장벽을 넘어서 영국인 작가 숨결 그대로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원서 "Sense of An Ending"도 주문해 본다. 젊은 반스와 Englishman Barnes가 기다려지는 밤이다.

# 문장, 문장 속속들이 리뷰는 다음 편에 계속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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