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시대의 특징에 대해 말해볼 학생 있나요?" 우리가 시선을 피하자 그는 알아서 결정을 내렸다. p.14
- 마셜은 선생의 질문 속에 숨어 있을 만한 복잡한 의미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은 답을 정했다. "혼란이 있었습니다." p.15
[Piece of my thoughts] 영국 소설이다. 하지만 내 어릴 적 좁은 교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교 교육이라는 것에서 답을 구하는 자와, 답을 피하는 자가 늘 있기 마련이다. 답을 피하지 못한 자는 늘 있기 마련이다. 거기에는 꼭 엉뚱한 답을 하여 반 학생 전체를 배꼽 잡게 만드는 자가 꼭 있기 마련이다.
- "정말로 그런 게 있다고? 그렇다면 나는 실직자가 되겠군. 안 그런가?"
선생에게 잘 보이려는 웃음이 잦아들자, 조 헌트 영감은 게으른 주말을 보낸 우리의 죄를 눈감아준 후, 우리의 머릿속에 아내를 여럿 거느렸던 도살자 왕족에 대한 정보를 채워주었다. p.15
[Piece of my thoughts] 알랭 드 보통이 펼치는 작가라면, 줄리언 반스는 응축하는 작가이다. 문장 하나하나에도 여러 가지 사건과, 정보, 관점이 응축되어 있다. 단단하다. 눈싸움을 하기 전에 적진의 대장을 한번에 맞춰 쓰러뜨러야겠다는 각오로 꾹꾹 눌러눌러 다지는 눈주먹처럼.
- 다음 날, 나는 예전에 베로니카가 나에게 준 크림 용기를 옥스팜(*영국 옥스퍼드에서 빈민 구제를 목적으로 설립된 자선단체) 상점에 내놓았다. 그녀가 진열대를 보길 내심 바라면서. 그러다 어느 날 들러서 확인해보니, 진열대에는 정작 다른 물건이 올라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치즐 허스트를 그린 작은 채색석판화였다. p.71
[Piece of my thoughts] 사랑은 나이와 상관없이 유치하고, 유아기적이다. 그런데 찬찬히 우리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른의 삶이라는 것도 유아기적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금의 말에도 흔들리고, 조금의 말에도 상처받고, 조금이라도 모이면 다른 사람들을 입방아에 올리고. 나도 그런 부류의 하나다.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그러한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게 한심하지만, 그 부류를 떠날 용기는 없다.
- 나에겐 증거도, 일화도, 기록물도 없다. 그러나 조 헌트 영감이 에이드리언과 논쟁을 벌이면서 한 말은 기억하고 있다. 그는 행위를 근거로 정신 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헨리 8세를 비롯한 기타 등등의 역사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반면에 개인의 삶에서는 그 반대가 진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현재의 정신 상태를 근거로 과거의 행위를 판단할 수 있다. p.80
[Piece of my thoughts] 지금 당신의 마음, 정신상태를 근거로 나는 당신 과거를 꿰뚫어 볼 수 있다. 당신 또한 현재의 나의 글을 통해 나의 과거를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쉽게, 빨리도 연인이 되었다. (중략) 그리고 맞고소도, 비난도 없이 헤어진다는 것. 쉽게 얻은 건 쉽게 잃게 마련이야. 애니는 그렇게 말했고, 그건 진담이었다. (중략) 관계란 무언가의 증거로서 복잡함을 요하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대체 무엇에 대한 증거인가? 깊이? 진지함? 그럼에도, 깊이나 진지함을 바치지 않고도 관계가 정말로 복잡하고 까다로울 수 있다는 건 맹세코 사실이다. p.84
[Piece of my thoughts]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나는 단 하룻밤의 대화만으로도 운명임을 직감했다. 나는 이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이 생을 기다렸던가. 나는 그녀를 잊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깊어지지 못했다. 쉽게 얻는 것은 쉽게 잃는 법이다.
- 내가 집에 왔을 때, 어머니는 내 얼굴에 분가루가 묻도록 얼굴을 부비면 뼈가 으스러져라 끌어안고 나선, 목욕을 하게 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저녁 메뉴'라고 믿던 음식을 차려주었다. 한동안 내 입맛에 맞춰 메뉴을 갱신하지 못한 어머리는 배려해 나는 그러려니 하고 먹었다. p.85
[Piece of my thoughts] 어른이 되고 나서 - 어른이라고 해봤자, 예전보다 나이를 더 먹었을 뿐이다 -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찾는 것은 명절 때 뿐이다. 그것도 한번의 명절이 짧으면 일년이 한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한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들이 좋아하는 떡을 잔뜩 쪄서 상에 올린다. 나는 떡이 싫다. 5만원, 10만원짜리 - 축의금으로 산 것과 진배없는 - 떡도 먹지 않으니 말 다했다. 개인적으로 축의금 보답으로 햄버거와 콜라를 돌리자는 주의다. 무튼 지난했던 어린 시절에 질리도록 먹어서 어른이 된 후로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어른이 된 아들의 입맛은 더이상 어린 아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시골은 시간이 느리다. 게다가 어미의 마음 속 시간은 느리다 못해 멈춰 있다.
'소설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직접 쓰는 "안나 카레니나" #1 (0) | 2021.03.16 |
---|---|
Into the Book: 시하와 칸타의 장 - 판타지 소설 첫 도전기!!! (0) | 2020.08.23 |
Into the Book: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2 -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 (0) | 2020.03.31 |
Into the Book: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0) | 2020.03.29 |
외로운 자여! 인간에 대한 사랑, 연민이란 무엇입니까? - 용의자 X의 헌신 (0) | 2019.10.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