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게 소설을 쓰게 해 준 남자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솔직히 형편 없습니다. 본인은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 보통은 자기 창작품과 사랑에 빠지는 나르시시즘 경향이 있으니까요 - 제 눈에도 형편 없으니 남들 눈에는 어떨지 두렵습니다.
소설을 쓴 가장 큰 이유는, 솔직히 말씀 드릴까요? 제 2의 해리 포터를 써서 조앤 롤링처럼 소설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할까요?(웃음).
이런 소망은 어린 시절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순수하게 이야기꺼리 - 영화나 소설 - 를 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순수했던 시절이기도 했구요. 그래서 제 집에 보면 시나리오 작법서 비스무레한 책들이 꽤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작법서는 쓰잘데기가 없습니다. 왜일까요?
제 머릿속에 아무런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좀 더 어린 시설로 거슬러 가면 만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드래곤볼 그림을 따라 그리면서 만화가의 꿈을 키워나가며, 연습장에 컷을 나눠서 제 나름의 창작만화를 그리곤 했는데, 결국 포기하게 된 것은 그 이상의 이야기를 지어내기 어려워서였습니다.
생각이 안 나네... 이래서야 만화가 되겠어?
라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제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물론 그림실력도 만화가로 데뷔하기에는 다소 부족했습니다만)
그런 저에게 감히 소설을 써도 된다는 희망을 다시 불어 넣어준 사람이 바로 스티븐 킹입니다.
스티븐 킹은 그의 소설창작 에세이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미리 짜여진 이야기를 쓰는 것을 극도로 경계합니다. 화석을 발견할 때 안에 어떤 공룡의 화석이 있을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것처럼 글쓰기도 그래야 한다고 말합니다. 생생한 글쓰기는 화석 캐기와 같다. 그냥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창조한 등장인물들이 제각기 움직이기 시작해서 스스로 말을 하고 행동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일단 궁둥이를 붙이고 최소 하루에 천 자(단어수를 말합니다)를 쓰라고 말입니다.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그래서 하루 천자는 아니고, 그리고 매일도 아니지만 되도록 소설 쓰는 것을 매일의 루틴으로 한 지가 그래도 약 2년이 지났습니다. 아침형 인간을 하면서 20~30분을 무조건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어떠한 습작도 해 본 적이 없기에 - 간혹 블로그에 일기 식으로 생각을 나열한다든지, 영화리뷰나 이런 식의 독서리뷰를 남긴 적은 있지만요 - 소설 쓰기는 너무 더디고 고된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화석이 나올 때까지는 캐보자, 는 마음으로 2년이 흘렀습니다.
화석 발견했냐구요?
아뇨.
실망하셨나요?
여러분보다는 제가 더 실망을 했을 테니, 저를 먼저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막상 소설을 써보니 하루 20, 30분만으로는 택도 없습니다. 최소 1시간은 필요합니다. 스티븐 킹이 말한 하루에 단어 천자를 쓰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1시간을 쉬지 않고 글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이건 최소 시간입니다. 최소 그 정도는 써야 소설가로서 걸음마를 시작한 셈입니다. 즉 남들보다 더 뛰어난 소설을 쓰고 싶고, 소설쓰기 실력을 더욱 빨리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그 시간을 더 늘려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현재 직장을 다니는 저로서는 -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는 저로서는 - 1시간 이상을 빼기 어려워서 소설 출간 일정을 최소 5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2년은 빼고 앞으로 최소 5년입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렇게 저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 준 스티븐 킹의 소설을 직접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 물론 당연히 공포물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포영화 보면 그 잔상이 너무 오래 가서 - 그래도 재밌다고 하는 공포영화는 거의 다 봅니다만 - 되도록 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공포영화야 그 공포를 느끼는 시간이 2시간이면 다이지만 - 그 남은 잔상의 시간은 빼고 - 공포를 글로, 즉 소설로 접하자면 책을 늦게 읽는 저로서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공포스럽게 보내야 할까요? 그런 상상을 하고 있자니 도저히 스티븐 킹의 소설은 저의 선택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 책을 접했습니다.
미스터 메르세데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스티븐 킹이 공포와 호러의 거장이지만 마냥 공포스러운 것만 써제낀 것은 아닙니다.
쇼생크 탈출, 스탠 바이 미 와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들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러다가 추리소설도 스티븐 킹이 쓴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웃사이더라는 2권짜리 작품입니다. 작년에 사놨는데 아직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확실한 건 제가 가장 최애하는 작가인 기욤 뮈소라 할지라도 시작 페이지 10페이지로만 저를 사로 잡지는 못합니다. 그런 작가가 있다면 기욤 뮈소를 제치고 제 최애 작가로 등극할 것 같지만, 아직은 찾지 못했습니다.
무튼 저는 그런 기간, 즉 이야기에 빠져드는 기간을 예열기간이라고 칭하는데, 모든 책, 특히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는 소설은 그 예열기간이 필요합니다. 어떤 책은 책장을 덮는 마지막까지 예열기간인 듯싶을 때가 있지만 말입니다. 그 예열기간이 짧은 것이 페이지 터너라 불리는 대중소설가의 특징이자, 그 선두에 선 사람이 바로 기욤 뮈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스티븐 킹도 영화화된 작품들이 많고, 이야기의 제왕이라고 불리지만, 역시나 예열기간이 긴 작가 중의 하나인 듯싶습니다. 그래서 아웃사이더는 조금 읽다가 아직 제 책장에 꽂혀 있지만, 또 하나의 추리소설인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어쩐지 그 예열기간을 참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당연히 1권짜리였기 때문입니다(아웃사이더는 2권짜리입니다).
막상 시작한 미스터 메르세데스도 초반부에는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도 밝히지만, 욕설 같은 것을 서슴지 않고 묘사합니다. 그런 것이 생생하고 실제와 가까운 것이라고 굳이 숨길 필요가 없고, 되레 진실한 것이라서 독자들에게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탓인지 소설 곳곳에 미국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책들은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더욱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물론 번역의 탓도 있을 것 같습니다. 스티븐 킹의 재미난 말솜씨를 역자가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책을 읽을수록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갈수록 역시나 왜 이야기의 제왕, 이야기의 제왕,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번역이 어찌됐든, 책 곳곳에 미국 색채가 잔뜩 묻어나든, 미국식 속어나 욕설이 많이 있든 상관없이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건데?
# 더 읽고 싶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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