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았습니다.
까무라치겠다.
딱 떠오른 단어입니다. 최근 1년, 아니 시간대를 길게 늘려서 3년, 아니 5년까지 늘려 잡아도, 소설 아니 제가 읽은 모든 책을 통틀어서 이렇게 소스라치게 감탄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무려 1999년에 나온 초판이 나온 책입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2008년에 찍은 10쇄판입니다. 10쇄인데도 들고 다니면서 읽기 창피할 정도로 누렇게 뜬 책의 속살과 무엇보다 너무나 촌스런 표지에 솔직히 손이 가지는 않는 책입니다. 하루키이기에 읽어본다, 는 마음이 서지, 그렇지 않고서는 거들떠도 안 볼 책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책을 다 덮고, " 까무라치다"라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까무라치다"라는 말은 아마 기절하다의 방언일 겁니다. 비속어인가요? 방금 사전을 확인해보니, 까무러치다, 가 맞는 말이고, 뜻은
얼마 동안 정신을 잃고 죽은 사람처럼 되다. ‘가무러치다’보다 센 느낌을 준다.
까무러치게 놀라다
이렇습니다.
그래도 전 까무라칠랍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는 적잖은 충격을 받고, 해변의 카프카를 완성하기 전에 썼던 소설이 스푸트니크의 연인이라서 그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 같아서 선택을 하게 되었는데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단정짓기에는 아직 하루키의 다른 소설들을 거의 읽지 않아서 함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루키의 데뷔작인 "바람의 소리를 들어라"가 그 이후 모든 소설의 원전급에 해당된다는 리뷰를 본 적이 있는데 - 어떤 분은 한 문장이 또는 한 문단이 또는 한 페이지가 하나의 소설로 발전했다고까지 하시는데 -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스푸트니크의 연인과 해변의 카프카의 연관성을 논하기 전에 바람의 소리를 들어라를 먼저 읽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소설은, 그야말로 완벽했습니다. 솔직히 역자인 이정환씨에게는 죄송하지만, 마지막에 "옮긴이의 말"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분명 저는 역자가 옮긴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는데, 역자의 해석은 마음에 안 들었다는 게. 그도 그럴 것이 어떻게 보면 당시에 너무 문학비평적으로 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을 소우주라고 한다든지, 뫼비우스의 띠를 언급한다든지, 자아의 양면성이라는 용어를 쓴다든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죽은 언어를 빌려오고, 시체 같은 정의 속에 소설을 가둬 버리는 기분입니다. 갓 잡아 펄떡 펄떡 뛰는 물고기를 바로 회 쳐 먹지 않고, 굳이 숨이 멎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제서야 회를 먹는 기분이랄까요?
제가 방금 이상한 비유를 들었지 않습니까?
아마 "스푸트니크의 연인"의 후유증이 아닌가 싶습니다.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일단 내용을 차치하고 문체적으로만 따진다면 작정하고 비유법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고 쓴 소설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설은 문장 자체를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독자에게 최고의 선물을 줍니다.
# 계속 읽고 싶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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