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책에서 손을 떼지 않는 과장님이 계셨습니다. 출근해서 업무가 시작하기 직전까지, 점심을 먹고 저는 지난밤이 남겨 놓은 숙취로 낮잠조차 들기 힘들어 했을 때조차 그 과장님은 짧은 휴식을 취하지도 않고 책을 읽었습니다. 게다가 그 책은 2~3일에 한번씩 바뀌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제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즉 출근시간에도 퇴근시간에도, 아마도 자기 직전까지도 책을 읽고 계셨을 겁니다.
그 즈음 - 책제목이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 3천권의 책을 읽으면 머릿속에 폭발이 일어난다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당연히 진짜 폭발은 아닙니다(웃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들에 큰 변화가 생긴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지금처럼 부(富)에 대한 책이 인기인 시절이라면, 아마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자처가 선명하게 보인다, 뭐 그런 뜻이지 않을까요?
제 눈에 그 조건(3천권 독서)을 이미 충족하고도 남은 것 같은 분은 그 과장님뿐이었습니다. 궁금증을 못 이기고 그 분에게 물었습니다.
"과장님, 지금까지 몇 권 정도 읽으셨어요?"
"글쎄요. 딱히 세보지는 않아서..."
"3천권은 넘게 읽지 않으셨어요?"
"3천권요? 음... 많은 것 같으면서도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해서 많이 읽었으니 아마도 그 정도는 넘게 읽었을 것 같네요."
"그럼 폭발, 이런 거 일어났나요?"
폭발에 대해서 저는 과장님이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부연설명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과장님이 그 나름의 답을 해 주었습니다.
"아뇨. 그런 거 없어요. 딱히."
다소 실망했지만, 그 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고, 저 또한 수많은 책을 제 인생 속에 쌓아왔습니다. 지금쯤 저도 3천권을 훌쩍 넘게 읽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과장님의 대답과 비슷합니다.
어쩌면 그 폭발은 영원히 안 올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없었던 것을 책을 팔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마케팅적으로 이용했을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 당시 그 과장님은 소설을 위주로 읽어 왔고, 저도 자기계발서나 가벼운 교양서 위주로 읽어 왔습니다 - 지식 위주의 책을 읽어야만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에 통하면 다른 것에도 통하는 것처럼, 나름 책을 많이 읽어온 입장에서 지금부터 지식 위주의 책으로 - 그게 역사지식이든, 과학지식이든, 잡학이든 - 바꿔서 3천권을 채운다고 해도 지금과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허무하시다구요?
그럴 것 없습니다. 퇴적층이 하루 아침에 쌓인 것이 아닌 것처럼 -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천천히 쌓인 것처럼 -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정신 세계 어딘가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분명 그럴 거구요. 우리가 나이가 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이 많이 돌았는데, 이 긴 이야기를 한 이유는 그 과장님이 유난히 선호하는 책 부류가 바로 "소설"이었습니다. 소설 독서로만 따지자면 저는 신생아 수준이지만, 그 과장님은 교수님 대열에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올해 들어 소설의 마력에 깊이 빠져 있었기에, 그 과장님께 추천해줄 만한 소설이 있느냐 물었습니다.
여러 소설을 추천해 주셨는데, 개중 하나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픽처"였습니다.
# 더 읽고 싶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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