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터벅터벅 2층으로 올라가, 발코니에 서서 어두운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동네와 배의 불빛이 만을 따라 진주알처럼 박혀 있었다. 바닷바람에 내 긴 머리칼이 이리저리 흩날리는데도 나는 그 불빛을 계속 바라보고 싶었다. 저 불빛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의 생활이 있으리라. 밤이 찾아와, 사람들은 모두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을 서두르고 있으리라. 나는 그곳이 그리웠다. 그 분위기에서 나만 홀로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 데이지의 인생 p.20~21
- 우리는 편안해서, 가장 가까워서 서로에게 기대기도 하지만, 또 가장 큰 실수를 하기도 한다. 지금쯤 자고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니지, 야근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바쁘니까 야근을 하면서 전화를 못 받을 거야, 분명... 온갖 이성적인 이유들을 만들어 내면서 나 또한 어제는 투정부리고 의지하고 싶었다. 바다를 담는 통을 가진 남자가 되고 싶었고, 꽤 오랜 시간 그렇게 보일 수 있었는데,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굳이 변명을 해 보자면 밤이 깊었다. 나는 취해 있었고, 외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몇 일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붙어 있어서 그날도 붙어 있고 싶었던 모양이다.
# "그럼 나갈게. 당연하지. 언제야, 그레?"
"다음 주 수요일."
"알았어. 그때까지는 나갈게. 괜찮아, 걱정하지 마."
"즐거웠기 때문에, 말을 못 했어."
그가 말했다.
우리가 무슨 즐거운 일을 했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없었다. - 데이지의 인생 p.32~33
- 좋은 일은 어쩌면 자주, 아니 지나치게 여러 번, 딱히 느끼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게 일상의 숨겨진 진실일지도.
# 그러고 보니 웃으면서 밤길을 걸어 돌아올 때, 이렇다 할 일이 없었는데도 나중에 되돌아보면 아주 즐거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 나날도 이제는 끝이다. 헤어질 때가 되면 늘 좋은 일만 많았던 것처럼 느껴진다. 추억은 언제나 특유의 따스한 빛에 싸여 있다. 내가 저세상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이 육체도 저금통장도 아닌 그런 따스한 덩어리뿐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세계가 그런 것들을 몇 백 가지나 껴안은 채 사라진다면 좋겠다. 이런저런 곳에 살면서 쌓인 갖가지 추억의 빛을 나만이 하나로 이을 수 있다. 오직 나만이 만들 수 있는 목걸이다. - 데이지의 인생 p.34~35
- 어릴 적 할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그렇게 어른들이 보지 말라고 했지만 소변이 너무 마려워 앞마당에 휘갈겨야 한다는 핑계로 결국 보고 말았다). 바로 이 사건이 그런 생각을 촉발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저런 사건들이 쌓여 어릴 적 허무주의에 빠진 적이 있다. 사람은 왜 사는 것일까, 어차피 죽어 묻혀 흙이 되고 마는 것을. 딱히 이렇다 할 종교가 있는 집안도, 받들어야 할 가훈이 있는 집안도 아니었기에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당시에는 책을 지금처럼 읽지도 않았으니까(물론 책 속에 그런 답이 있을지는 아직도 미지수지만). 시간이 훌쩍 흘러 내 몸이 성장의 끝에 달하고, 이제는 차츰 시들어가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는 나이가 되자(하나 둘씩 아프기 시작하니(웃음)),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어쩌면 죽는 그 순간 돌아보는 것은 - 내세나 영혼의 존재 유무를 떠나 - 아마도 내가 간직한 기억들, 개중에서도 아름다운 추억들이 아닐까 싶다. 그 시절을 형형색색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시절이 주는 명징한 따스함, 그런 것을 가지고 떠나는 것이리라. 나란 존재는 말이다.
# 이불도 싸 버려서 그녀의 더불 침대에서 같이 잤다. 머리맡까지 온갖 것들이 놓여 있었고, 나는 후회할 일은 남기고 싶지 않고 마지막이니까 할 말은 하자 싶어서 (집안 물건 정리는 거의 하지 않는 여자였다 - 발췌자 주) "지진 나면 위험하니까, 머리맡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하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고르지 못한 치열을 드러내며 히줏 웃고는 "알았어."라고 대답하고 역시 내가 좋아하는 가냘픈 겨드랑이를 보이며 불을 껐다. 순식간에 방이 고요해지고, 저쪽으로 내가 어제까지 잠들었던 바잉 보였다. 그녀가 훌쩍훌쩍 울어서, 가는 그녀 손을 방았다. 쫓겨 나가는 것은 나인데, 왠지 이 항구에서 저 항구로 떠도는 사내가 된 기분이었다. - 데이지의 인생 p.38
- 곧 결혼을 해서 남편과 같이 살아야 한다고 동거하는 남자를 집에서 내보내는 여자와 그 남자(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다. 일본에서는 동거라는 것이 비교적 자유로운가? 게다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둘은 아마도 꽤나 성관계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 남자가 좋아하는 것은 그녀의 고르지 못한 치열과 가냘픈 겨드랑이다. 그녀의 영혼까지는 좋아하지 못하지만 그녀의 육체의 일부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사랑은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내가 그런 적은 없어서 짐작만 할 뿐이다). 이런 걸 가볍다고만 할 수 있을까.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이 부럽기는 하네...
그런데 반전은 그 남자가 실은 여자였다는 거였다. 보통 나의 경우 소설을 볼 때 작가를 먼저 택하는 편이다. 이 작가의 작품이라면, 또는 누군가 어떤 소설을 추천을 해 줬을 때도 작가를 살펴본다. 이 작가는 몇 살에 데뷔했고(이게 나에게는 중요하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니, 하는 질투를 하기도 하기도 하고, 또는 늦은 나이에도 데뷔할 수 있구나, 라는 희망을 발견하기도), 어떤 어떤 문학상을 받았는지 확인한다. 당연히 성별 확인은 기본, 아니 본능적이다(책표지 안쪽에 저자 약력과 함께 사진이 실린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서 '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인칭 시점의 소설은 어쩔 수 없이 작가의 성별을 대입한다. 그래서 작가와 반대의 성별의 주인공이라면 꽤나 혼란스럽다. 이 소설은 애초에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여성으로 작품을 시작했다가, 중간에 남자로 보이는 부분들이 언뜻언뜻 보여(꿈 속에는 어릴 적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는 장면에서 연인의 감정이 느껴졌다고 할까) 남자로 수정했다가, 명확하게 여성임을 대목을 보고서야 비로소 혼란이 잠재워졌다. 그러니까 그 여자의 치열, 겨드랑이는 여자가 여자에게 느끼는 애정의 상징 같은 것이다.
# "이사 갈 집 정하고 왔어."
밤에 집으로 돌아온 다카하루에게 말했다.
"그래?이제 데이지가 어서 오라고 하는 소리 못 듣겠군"
다카하루가 아쉬워했다.
"언제 이사할 건데?"
"계약하면 곧. 그 전에 청소하는 사람이 드나들 거래."
"그때까지는 있을 거야?"
"아니, 가구 몇 가지 가지러 갈 거고, 모레는 이모 집에 들어갈 거야."
"짐 싸는 거 도와줄까?"
이 친절함, 에어컨 때문에 찜찜해서 그러는 걸까.
"에어컨은 그냥 빌려 줄게. 그 집에는 있으니까."
"그거야 언제든지 돌려줄 수 있어. 그럼, 운전이라도 해 줄까?"
그는 어디까지나 친철했다.
"좋아, 부탁할게."
능숙하게 응석을 부리는 것도 더부살이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 데이지의 인생 p.40~41
# 모든 것이 느릿느릿 흘러갔다. 나는 차 밖에 있었고, 내 조그만 손바닥은 빗방울을 맞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허연 흰자위만 드러낸 채 입으로는 피와 거품을 쏟아 내며 헉헉 힘겹게 숨 쉬는 엄마가 누워 있었다.
그 광경과, 그것을 보았을 때의 내 기분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한다. 그 후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이면에서 그 충격과 비슷한 것을 감지하게 되었다. 아무리 평화로운 풍경이라도 그 뒤에는 위태로움이 숨어 있으며, 우리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리낌 없이 웃을 수 있음에 신이라 불리는 존재가 결부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그만큰 아주 친절하고 아름다운 예정을 따라 우리는 기적적으로 살아 있으며, 그 예정에 삐끗 어긋난 경우를 두고 신을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느껴질 만큼 많은 생명이 무사히 이 땅에서 약동하며 살아간다. - 데이지의 인생 p.52
# 병원에서는 매일 누군가가 죽고, 울었다. 응급 병원이라서 더욱 그랬다. 나는 그런 광경을 보면서 죽음이라 '늦든 빠르든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했고 또 놀랐다.
모두 나를 안쓰러워했다. 이모가 가엾게 왜 네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고 연신 울먹여, 나만 이런 일을 겪었을 뿐 다른 사람의 부모는 죽지 않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실을 알았을 때는 경악했다. 왕자였던 석가모니가 몰래 궁 밖 거리로 나왔다가 병자와 죽은 자를 보았을 때의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는 나만 가엾고 내 부모만 죽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지내다 보니, 매분 매초 모든 이에게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 데이지의 인생 p.65
# 나는 생각했다. 불쌍하지 않다. 고독하거나 안쓰러운 죽음이 아니다. 조금 어이없기는 하지만, 모두 겪는 일이니까 특별하지도 않다. 어린 시절 감기에 걸려 열이 펄펄 오르면, 혼자 꼼짝 않고 누워 있었지만 조금도 고독하지 않았고 나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병을 앓는 것과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별개이기 때무이다. 같은 반에는 그런 때 부모가 극진히 간병해 준다는 아이도 많았지만, 부럽지 않았고 딱히 행복해 보이지도 않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때가 오면 모두, 고인 물을 빼내고, 튜브를 연결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몸의 생명을 잃어 간다. 달리아에게는 그런 시간이 조금 빨리 왔을 뿐이다. 주위에 아무도 없어도, 갑작스레 닥쳐와 놀랐어도, 그때가 오면 몸이 수긍한다. - 데이지의 인생 p.101~102
# 자신의 반쪽이 알게 모르게 없어진 기분이었다.
무슨 까닭으로 엇비슷한 운명을 지닌 아이 둘이 지국의 반대편으로 갈라진 것일까.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서도 꿈을 통해 교류를 이어 가려 했던 것일까. 약속하고 부탁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알 수 없는 독특한 힘이 작용해서, 그런 우연을 만들어 낸 것이다. 글고 언젠가 내가 죽을 때에도, 나는 시공을 초월해서 달리아와 교류할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뭐라고 말하지 않았어도 그런 약속을 나눈 것이리라. 그 무렵, 그 어린 소녀들의 혼이. - 데이지의 인생. p.106
# "하지만 난, 그 녀석이 사고 당한 사이사이에 몇 번 만나면서, 언젠가 목 때문에 죽지 않을까, 그런 운명을 타고 태어난 거겠지, 하고 생각은 했지만, 한 번이라도 더 만날 수 있어서 기뻤던 때가 아주 많았어. 목 때문이 아니라도, 심장이 나빠서든 에이즈든 자살이든, 다 마찬가지 아닐까. 한 번이라도 만나면 그때마다 한 가지 추억이랄까, 공간이 생기잖아. 그것은 언제든 살아 있는 공간이고,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 세상에 절대 없었을 것이기도 하고, 인간이 무에서 만들어 낸 것이니까. 댐이나 로켓 같은 것도 똑같지. 사람과 사람이 아무것도 없는 데서 창조해 낸 세계잖아. 하늘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이 사고를 빌미로 우리에게서 그를 빼앗아갈 수는 있어도, 영원히 그 즐거웠던 시간을 빼앗아 갈 수는 없으니까 우리가 이긴 거라고 생각해. 이기고 지고 할 것도 없지만. 게디가 그런 운명도 슬프다면 슬프지만, 우리가 장례식에서 웃을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일이야. 그 정도로 사고가 많았으니 목 때문에 언젠가는 죽겠다고 생각은 해도, 정말 죽을 때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잖아. 결국 목뼈가 부러져 죽었지만, 어차피 죽을 거 고통이라도 덜하게 일찍 죽기를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뭐.". - 데이지의 인생 p.112~114
- 신이 하늘이 운명이 우리의 목숨을 별안간 거둔다고 해도, 우리가 만나며 만들어낸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 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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