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0도에 육박하는 날씨다. 온몸이 으스스하고 한번 걸린 감기는 떨어지지 않아 간만에 목욕탕에 갔다. 41.5도 가량 되는 온탕에 몸을 담그니 그동안 얼마나 몸을 혹사시켰는지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몹시 추워진 외부 기온 탓도 있지만, 아직 젊은(?) 치기 탓인지 내복도 입지 않고, 덥다고 점퍼도 별로 입지 않고 돌아다녀서 온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온탕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채 30초도 되지 않아서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온몸의 묵은 때를 덜어내고, 목욕탕을 나셨다. 고작 한시간 남짓 목욕탕에 있었지만, 몸이 무척이나 뜨거워져 있었다. 너무 추운 날씨 때문에 집에서 챙겨온 내복을 보고, 순간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후끈 달아올라 있는데 굳이 입을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혹시 몰라 입었는데, 역시나 답답했다.
목욕탕을 나서면서 약국이 보였다. 감기약과 쌍화탕을 사서 밖으로 나섰다. 밖은 들어오기 전과 같이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뜨거워진 몸은 자신감이 넘쳤다. 특히나 내복까지 입어서인지 전혀 춥지 않았다. 이대로 집까지 10분 남짓 걸어가도 끄덕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맨손이 문득 보였다. 점퍼 안의 가죽 장갑이 떠올랐다. 굳이? 잠시 생각했다가 뜨거워진 신체의 온도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호하기 위해서 예방 차원에서 장갑을 꼈다. 덥지 않을까? 생각했던건 오산이었다. 장갑까지 끼어서인지 묘한 자신감이 넘쳤다.
세신까지 해서인지 몰라도 허리는 곧추 세서 키가 한 2센티는 더 커진 느낌이었다. 가슴을 펴고 추위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저 멀리서 두터운 파카에 모자까지 덮어 쓰고 으스스 떨며 걸어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공감할 수 없는 온몸의 자신감. 그렇게 5분 정도 걸었을까. 금세 뜨거워진 몸은 식고, 추위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5분이면 집에 도착하지만, 이런 날씨에 단 10초도 밖에 서 있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알기에 갑자기 겁이 났다.
내려갔던 점퍼의 지퍼를 턱끝까지 채워 올리며, 생각했다.
우리는 자만한다. 우리는 한 순간의 자신감으로 무모한 결정을 한다. 그 자신감은 환경에 의해, 얼마나 쉽게 파괴될 수 있단 말인가.
그나마 내복이라도 미리 챙겨입고, 장갑이라도 미리 껴서인지 집에는 비교적 따스하게 돌아왔다. 간만에 목욕을 해서인지 마음이 고요하고, 초저녁인데도 벌써부터 졸음이 쏟아진다. 오늘 밤은 모처럼 숙면을 취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예방이라는 것은 중요하다. 삶은 변화무쌍하여 예측하기 어렵지만, 어쩌면 미래를 가장 잘 맞이하는 비법이 아닐까 싶다.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것이 비록 그것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더욱더 예방적 삶을 살고 싶다.
지인들의 메시지에도 무척이나 차분하게 답을 했다. 책상 위에는 스케치북, 4B연필, 그리고 지우개가 놓여 있다. 집을 나서기 전 예정했던대로 나는 차분하게 그림을 그렸다.
외부의 현상은 그대로이다. 그것을 해석해내는 내가, 그것에 반응하는 내가 바뀔 뿐이다.
간만에 고요하고 차분한 나를 만났다. 이리저리 갈팡질팡 나대는 나, 그도 내가 사랑하지만, 차분하고 고요한 나도 나는 사랑한다. 오늘은 간만에 무척이나 깊은 잠에 빠져들것만 같은 저녁이다.
목욕탕에 가세요. 쉬이 행복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생각보다 가까이, 바로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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