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왜 선생님께서는 유달리, 그리고 그다지도 지독히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를 고집하시는가요?
A. 실은 그 시작은 굳이 기억하려면, 기억해낼 수 있겠지만,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당시 어떤 책을 읽었던가, 아면 어떤 결.정.적. 계기 같은 게 있었을 거에요. 사실 우리네. 우리네 라고 말하니깐 웃기네요.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우리네'라는 말을 참 즐겨 쓰고, 좋아라 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어요. 젊은 시절부터 즐겨 썼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우리네'라는 통칭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지 알았지만, 그냥 버릇처럼 쓰고 있더라구요. 혹시나 나는 그렇지 않은데 하시는 분들까지 제가 싸잡아서 통칭했다면, 이 자리를 빌어서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차, 질문이 뭐였죠? 아, 새벽을 고집한다. 이 나이가 되면 그래요. (사회자 : (웃음)) 제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말아요. 그러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러고 있어요. 아, 또 그러고 있네요. 빨리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기억이라는게 왜곡되기 마련이니, 저는 굳이 그 계기, 기원을 지금에서야 찾아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인생의 어떤 우연한 계기가 있었고, 그게 '우리네'라는 통칭을 즐겨쓰는 것처럼, 말하고 보니 연관이 있네요. (긁적긁적) 그게 그냥 버릇처럼, 습관처럼 제 삶에 녹아내렸다? 박혔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답변이 됐나 모르겠네요.
Q. 네, 버릇처럼 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굳이 선생님의 아픔일지, 기쁨일지 모르겠지만, 그 선생님의 왜곡된 기억을 끄집어낼 생각은 없는데요. 그래도 '우리네'들이 (하하) 궁금해 하는 것이 그래도 왜 굳이 새벽이냐 라는 질문일 것 같습니다. 다시 표현하자면, 요새 유행하고 있는 '밤보다는 새벽'? (하하) 이것도 선생님이 작사한 노래죠?
A. (하하) 그 질문을 들으니 새삼스레 왜곡된? 기억이 떠오르네요. 젊은 시절 저는 사실 밤을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밤은 사실 대단히 유혹적이고 치명적입니다. 여기서 유혹적이라는 말을 쉽게 표현하면, 타인을 유혹하기 쉽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밝은 대낮보다는 조명 아래에 있을 때 더 매력적으로 보이고, 또 우리네, 또 쓰고 마네요, 무튼, 우리네 인간들은 그 조명 아래 있을 때 더 감상적이 됩니다. 즉, 상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밤에게 유혹당하고 있는 겁니다. 듣기만 해도 치명적이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니 지금이 밤 11시네요. 어때요? 저는 아까보다는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나요? (하하) 너무 어렵나요? 더 쉽게 얘기하면 왜 클럽에는 밤에 선남선녀가 많을까? 이런 우스꽝스런 생각을 저는 해 봤습니다. 술에 취해서? 사람들이 몰리니 평균적으로 외모수준이 올라가서? 다분히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들이 모두 밤에 유혹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밤이 싫습니다.
Q. 밤이 유혹적이라서 싫다. 언뜻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하면서도, 제가 감히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저는 도피적이라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만......
A. 사람을 꿰뚫어 보시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맞습니다. 사실 처음은 도피적이었습니다.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기억은 왜곡되기 때문에 지금에서야 보면 모든 것이 저의 기준에 맞추어 아름다워 보이고,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밤보다는 새벽(하하)을 선택했던 그 시점은 어쩌면 저는 도피적이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더 쉽겠네요. 저는 제 스스로 참 나약했고, 제 개인적으로는 남들보다 쉬이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뭐 이렇게 말씀드리면, 제 젊은 시절이 너무 망나니 같은데, 가만있자 더 쉬운 예를...... 이건 어떨까요? 그러니까 실은 밤은 나쁜 짓을 해도 가려질 정도로 어두운 세계라서 그런지 우리는 술도 밤에 마시고, 몹시 취해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도 그 속에 파묻혀 보이지가 않아요. 유혹적이라는 것은 타인을 유혹하기도 쉽다는 거에요. 밤 늦게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야, 뭐하냐? 한 잔 하자, 라고 말하면, 친구가 쉽게 넘어옵니다. 낮보다는 밤? 이라고 해야 할까요? 고백을 할 때도, 기억을 더듬어보면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볕 아래서 말하는 것보다는 짙은 어둠 속에서 고백을 하는 것이 더 확률이 높아요. 왜냐면 밤은 유혹적이니까요. 뭐랄까요. 그 어둠 속에서는 오롯이 그 두 사람의 마음만이 밝게 빛나 더 확실하게 보인다고 할까요?
Q. 쉽게 말씀해 주신다고 했는데, 저는 어렵네요. 정말 알 듯 모를 듯 합니다. 결론적으로는 저는 녹화가 끝나고 새벽 1시에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를 하려고 하는데, 어쩐지 자신감이 생기네요. 제가 잘 이해한게 맞나요?
A. 하하. 그게 또 그렇게 연결이 되나요? 여자친구가 야행성이라면, 저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미리 축하인사를 드려야겠군요. 사실 여러분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타인을 유혹한다는 비유를 갖다 쓴 거고, 사실은 저는 자.신.을 유.혹.한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어요. 사실 아까도 말슴드렸지만, 타인을 유혹하는 게 비교적 쉽지만, 어디 쉽습니까?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밤 늦게 전화하면, 집이 멀어서, 와이프가 있어서, 여자친구에게 술 안 마신다고 약속해서(적어도 이번주는), 뭐 별의 별 핑계가 돌아옵니다. 그래도 낮보다는 밤입니다. (하하)
Q. 그래서 밤보다는 낮, 아닌가요? 밤에 유혹을 하려면 낮에 미리 연락을 해야 하니, 농담입니다. 어떤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계속 말씀해 주시지요.
A. (하하) 그래서, 타인을 유혹하는 게 낮보다도 밤이 쉽고, 타인보다는 유혹하기 쉬운 게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술이 땡긴다라고 해서 친구들이 모두 거절했다고 칩시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죠? 그냥 혼자 마시면 됩니다. 같이 술자리를 가지는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인에게 술을 강요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마시는 것은 자유입니다. 저는 이것을 타.작.보다는 자.작.이 쉽다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술 얘기만 해서 거시기 한데, 상당히 비유적인 표현임을 이해하고 들어주세요. 술 뿐만 아니라, 온갖 유혹에 휘둘리기 쉬운게 어두운 밤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본인의 흠이 오롯이 감추어져 버리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꼭 '새벽도 어둡지 않냐?' 라고 따지는 명민한 분들이 계시는데, 여기 분들은 전혀 생각치 못했나 보네요? (하하) 제 생각은 밤은 그 어둠과 함께, 유난스럽게 감상적이 되어 버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남들도 다 깨어 있거든요. 우리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사회적 동물입니다. 어릴 적 유난히 잠들기 어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온갖 공포스럽고 괴기스러운 상상을 해 대며 무서웠을 때 저를 재워준 것은 어머니의 자장가 소리도 아니고, 모차르트의 클래식 음악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웃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였습니다. 어쩔 때는 술주정 소리이기도 했지만, 저는 그 소리가 유난히 포근했습니다. 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저는 한참을 공포와 싸워야 했습니다. 즉,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사회적 동물이라, 남들이 다 깨어 있는 밤시간대에 유난히 감정적으로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Q. 그럼 선생님께서 스스로를 유혹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새벽시간을 선택하셨다는 말씀이시네요?
A.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렇습니다. 사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지금은 모르겠어요. 너무 오래 되어서, 굳이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그랬던 것 같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까지 말씀드리고 나니, 보통 제가 아홉시에서 열시 사이에 잠이 드는데, 여덟시에 잠을 청해볼까 하는 유.혹.에 빠지네요.
Q. 네? 여덟시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A. 사실 이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아침의 시간도 달리기를 하고, 글을 쓰고, 그러고 나면 금방 날이 밝습니다. 그러면 가족들이 하나 둘 깨어납니다. 그 때부터는 제 시간이 없어지고 맙니다.
Q. 아, 조금 더 선생님 본인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조금 더 빨리 잠을 청한다는 말씀이시네요. 먼저 가족분들 말씀을 꺼내주셔서 드리는 질문인데, 그렇게 빨리 주무시면 가족분들은 뭐라고 하시나요?
A. 이 질문도 많이 듣는 건데, 저는 가족은 '상호존중의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읽었던 것 같은데, 누구의 글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한데, 이런 글귀가 있었어요. 사랑은 단거리지만, 연민은 장거리이다. 아마 맞을 겁니다. 우리는 사랑을 해서 가족이 되지만, 가족을 오래 유지하는 것은, 즉 장거리를 뛸 수 있는 것은 연민을 가질 때이다. 젊었을 때 본 글인데, 무척이나 공감을 해서 아직까지도 기억을 하고 있고, 저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딸 아이가 둘이지만, 아, 혹시 오해를 하실까 말씀드리는데, 아내는 한 명입니다. (하하) 아내와 딸 아이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합니다. 첫째 딸은 지독한 야행성입니다. 새벽 두 세시까지 안 자요. 제가 키가 안 큰다고 협박을 했지만, 안 통해요. 실은 지금 고 1인데, 이미 170이라 통할 수가 없기는 합니다. 그래도 저는 끊임없이 설득합니다. 190까지 크고 싶으면 더 자라구요. 사실 제가 협박과 설득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제가 생각하고 좋아라하는 가치관을 얘기를 할 뿐이지,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Q. 원론적인 질문입니다만, 그렇다면 자유와 방종, 그 경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어려운 질문이네요. 사실 저도 그 한계점, 경계점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사실 저도 이 나이가 되니 꼰대기질이 다분해서, 어떤 지점에 이르면 내 안의 꼰대가 발현하게 할까 라는 자문을 많이 해 봤습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가족들이 서로 연.민.이라는 감정을 잘 지켜내고 있는지 그 경계점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고민해 본 적은 없습니다. 답이 안 되었을 것 같은데, 실제로 그렇습니다.
Q. 네, 충분히 답변이 되었습니다. 선생님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선생님 따님께서는 한두시간 더 있다가 잘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자야 할 시간이지 않을까 싶은 밤입니다. 유.혹.에 넘어가지 마시고, 다들 바로 주무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해 주신 *** 선생님께도, 밤이 늦었으니, 뜨겁지만 고요한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럼 지금까지 "다시 오지 않는 시간, 이밤"의 사회를 맡은 ***였습니다. 다들 평안한 밤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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