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년 전이었나. 세상의 트렌드가 '미니멀리즘'이었을 때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서점에 가면, 정리의 힘, 청소법, 심지어 무소유 등의 책들이 진열대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 생각컨대, 내려놓기와 비우기가 유행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다 됐고 떠나자가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고, 어딜 떠나, 떠나면 다 돈이니 일상의 작은 행복에 기꺼이 만족하라는 소확행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하도 정치계가 어수선해서 아무리 트렌드에 맞춰 바뀐다 하더라도 우리네 삶 속의 가치를 우리가 스스로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련지 모르겠다. (굳이 꼽자면 워라밸? 개인주의?)
나는 크리스챤이지만 유달리 불교적 세계관에 공감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날라리 크리스챤"이라고 부른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108배하는 크리스챤이었는데, 108배도 이제 접어서 다시 예전처럼 날크다. 그래서인지 서점에 가면 불교적 세계관을 가진 책들에 유독 눈이 간다. 몇년전 접한 "미니멀리스트 붓다의 정리법"이라는 책이 기억이 난다. 비슷한 시기에 접했던 "스님의 청소법", "하루 15분 정리의 힘"이라는 책 덕분에 나는 당일 집에 돌아와 한바탕 집을 뒤집어 놓았다. 불교적 세계관답게 책은 '무소유'를 강조한다. 나에게 쓸모없는 자원은 버리면 쓰레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그것을 필요로 하는 타인에게 쓰임받는다는 논리다.
당시 많은 옷을 버렸다. 책에서는 우리는 옷장 안의 옷 중 20%만 입는다고 말한다. 버릴 옷과 지킬(?) 옷을 구분하기 위해 농에서 꺼내놓은 옷들은 가관이었다. 특히 이렇게 많은 여름 옷이 있는지 몰랐다. 난 단벌신사처럼 두세개의 티만 번갈아가며 입었기 때문이다. 최근 3, 4년간 입지 않았던 옷은 결국 향후 3, 4년도 입지 않으니 버리라고 책은 주장한다. 귀얇은 나는 곧이곧대로 따랐다.
문제는 책이었다. 한번도 읽지 않은 책, 읽었지만 가치 없는 책, 애착이 가는 책, 어중간한 책. 영어, 수학 교과서나 참고서는 별 고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혹시 다시 수능을 준비할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겨우겨우 추려내서 덜 헤진 책은 헌책방에 팔고, 많이 헤진 책은 집 앞에 갖다 버렸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필요없는 서류더미, 업체 홍보책자, 팜플렛, 혹시나 몰라 쌓아놓았던 여분의 탁상용 캘린더를 모두 버렸다. 모처럼 물티슈로 책상과 컴퓨터에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 이제야 숨쉬는 책상을 바라보며 뿌듯한 마음으로 의자에 걸터 앉았다.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동료들이 한마디 한다.
"퇴사해?"
한동안 정갈해진 나의 삶은 곧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평생을 익숙해진 삶이라 자괴감이 들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문제는 몇개월 뒤 내가 버리고 판 책 중에 다시 보고 싶은 책이 생겼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절판된 책. (사실 절판되었기 때문에, 더욱 갈구했는지도 모른다) 중고서점을 수소문하여 겨우 다시 책을 구했다. 그후로도 몇차례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런 경험은 다시는 책을 버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굳게 했다.
작금에 디지털 미니멀리즘이 대세?, 아니 대세는 아닐지라도 필요한 시대인 건 맞는 것 같다. 너무 과도한 이메일, 카톡 메세지, 문자 메세지, 온라인에서 맺어진 지인들과의 끝없는 채팅. 게다가 유튜브는 자동으로 내가 좋아하는 컨텐츠를 정성껏 끊임없이 알려주시니 말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정보의 홍수, 아니 너무 식상하다. 정보의 쓰나미? 정보의 유튜브가 좋겠다. 정보의 유튜브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사실 이메일 일괄처리나 메시지 차단 등 이런 식의 방법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왜냐면 모르긴 몰라도 몇 년 뒤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알림 메세지 속에 뒤덮여 살 것이다. 아직 우리 회사는 구축이 안 되어 있지만, 퇴근 후에도 사내 전산망의 이메일과 메세지의 알림까지 실시간으로 전달이 되는 시대가 이미 (일부 회사는) 도래했고, 곧 (모든 회사에) 도래할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알람을 끄고, 무시하면서, (몹시도 불안해 하며) 당당하게 살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역으로 "오프라인에서의 삶의 충만함"을 주장한다. 사실 우리가 친구와 만나 스맛폰에 잠식되는 것은 어찌보면 오프라인에서의 삶이 식상하고 재미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디지털화된 세상이라도 처음 사랑에 빠진 연인이 커피숍에서 서로 스맛폰을 들여다 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아무리 디지털화된 세상이라도 이탈리아 콜로세움을 처음 본 사람이 스맛폰만 들여다 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물론 스맛폰으로 촬영(인증샷)을 하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 또한 그 순간에 몰입하여, 그 오프라인의 현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시대일수록, 또 그것이 더 가속화될수록 우리는 어쩌면 더욱더 일상의 삶에서 더 큰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역설적으로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간만에 미니멀리즘을 다시 생각해 보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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