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김훈작가님의 "연필로 쓰기" 속에 풍덩 빠져들어 헤엄쳐 보겠습니다.
- 너무 늦기는 했지만, 나이를 먹으니까 자신을 옥죄던 자의식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나는 흐리멍덩해지고 또 편안해진다. 이것은 늙기의 기쁨이다. 늙기는 동사의 세계라기보다는 형용사의 세계이다. (중략) 자의식이 물러서야 세상이 보이는데, 이때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다. 너무 늦었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다. 이것은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의 세계이다. - 늙기와 죽기 중에서... p.74
# 훈형따라잡기) 나이를 먹으니까 소년시절, 숫청년시절 집착했던 사물에 대한 경계가 무너지면서 나는 편안해진다. 혹자는 물러터졌다고들 한다. 나는 자유로워졌다고 정의한다. 이것은 나이듦의 기쁨이다. 그러면서 너무 경계 없음을 가끔 경계한다. 나이듦은 서툴러짐이다. 곧잘 갈아끼웠던 전구도 이제 손에서 자꾸 미끄러지고, 거침없이 뛰어오르던 오르막산도, 날다람쥐처럼 뜀박질해내려오던 내리막산도 쉬이쉬이 걸어도 자꾸 무릎이 접질린다.
# 생각) 김훈작가가 2019년 봄에 펴낸 산문집이다. 그의 소설은 삭막하고 건조하여 어렵다. 하지만 그의 산문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동시대의 시선을 담아내어 간결하게 읽힌다. 총 34개의 삶의 단상들을 담았는데, 그중 첫번째로 뽑.아.낸. 주제가 바로 "늙기와 죽기"이다. 시골에 계셔서 명절 때만 뵙는 아버지의 볼은 매번 깊숙이 패인다. 매번 어색하다. 내 어릴 적 비오는날 먼지나게 내리치던 그 호통은 이제 온데간데 없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고 있다. 몇년전 얼굴도 모르는 먼 친척분이 우리네 형제만 살던 서울집을 찾아 온단다. 아니 얼굴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모르면 어떻게 찾아요? 라고 괜한 부에를 아버지께 부려봤다. 전철역 앞에 나가보란다.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두리번 두리번 거리니 저 멀리서 **네여? 라고 부른다. 아 네... 저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물었더니, 빼다 박았구먼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평생 아버지와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주위에서도 그랬고, 나도. 나이듦은 그 부모를 닮아가는 것이다.
- 아이가 아프고 젊은 엄마가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누항의 일상이 이처럼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나는 70살까지 산 것이다. 이것을 알았으니 70년 세월을 헛되지 않았구나 싶었다. - 늙기와 죽기 중에서... p.75
# 생각) 대학시절 씨씨에서 대망의 결혼까지 골인한 선배에게 연애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자연농원을 가란다.(*그 당시는 자연농원이었다. 꼭 밝히고 싶은건 그 선배가 한참 선배였다는거다. 한참.) 자연농원에서 놀이기구를 타란다. 놀이기구가 두려워서 떨리는 감정을, 사랑에 빠져 설레여 뛰는 감정과, 심장은 구분하지 못한단다.(*내가 기억하기로는 호기심천국이었나? 거기서 실험까지 했던 걸로 기억한다) 결혼까지 골인한 선배의 말이었으니 나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자연농원에 같이 가는 걸 실패했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그 실험은 아직도 실험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한때 공전의 히트를 했던 대사다. 그 말마따나 아플 때 약을 사다 주는 것만큼은 연애에 있어서 만병통치약은 없는 것 같다. 이 약만큼은 사랑의 남신 에로스도 질투를 할 정도라고 한다. 남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것, 그리고 관심받고, 사랑받고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묘약인 셈이다. 거창하게 포장했지만, 실은 아플 때 사람을 챙겨주는 것은 누항의 일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굳이 사랑에 빠질 필요 없이 쾌차를 바란다는 가식적인 말 한마디만으로도 아픈 사람에는 따스한 위로가 된다. 내 아픔에 빠져 남의 아픔을 외면하는 치열한 세상에서, 남사람의 아픔을 챙겨주는 것이 누항의 일상이 되기를 감히 꿈꿔본다.
- 주례사를 듣는 사람은 사람은 거의 없는데, 나는 그래도 이 젊은이들에게 단 한마디라도 귀담아들을 만한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 꼰대는 말한다 중에서... p.78~79
# 훈형따라잡기) 허례허식 중 최고봉이 주례사다. 사람들은 또 어느 대학 은사님이나 회사의 임원급이거니 심드렁한다. 행복해라, 서로 배려하라, 파뿌리 되도록 살아라, 맨날 듣는 얘기. 나는 그래도 새 출발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단 한마디라도 도움이 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 생각) 대학시절에 친구의 친구 결혼식에 초대된 적이 있다. 아니 이 나이에 무슨 결혼이냐고 호들갑을 떨었다. 역시 사고였단다. 그 당시에는 아까운 청춘이라고 놀려댔는데, 이 나이가 되니 그가 부럽다. 친구가 그냥 배나 채우고 가라고 초대했다. 대학시절이라서 옷이 가장 걱정이었다. 친구는 편하게 입고 오라고 했다. 대학생이 무슨 양복이냐고, 그게 더 이상하다고. 곧이곧대로 듣고, 나시를 입고 갔다.(*실은 고백할게 있다. 대학시절 소개팅 때도 그 나시 똑같이 입고 갔다. 요샛말로 하면 스웩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결혼식에서 만난 친구는 나를 몹시 나무랐다. 나는 속상했다. 니가 편하게 입고 오라며? 대학시절 가장 친한 친구는 그후로 조금씩 멀어졌다.
호기롭게 배를 채우고, 주례사를 듣는데, 군대도 가기 전 20대 초반시절에 모르긴 몰라도 인생 첫 주례사였을거다.
"어차피 사람은 바뀌지 않아요! 이 나이 먹으니까 알겠더라구요. 그러니까 노력하지 마세요! 그냥 사세요!"
뭐, 이딴 식이었다. 어린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배를 채운 뷔페가 역행할 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라니? 서로 배려하라는 정상적인 조언과 너무나 다른 주례사를 나는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하지만 이 나이가 되니, 그 분의 말에 백프로는 아니지만, 공감하는 바가 크다. 맞다. 사람은 참 바뀌지 않는다.(*아! 바뀐게 있다. 요새는 나시 안 입는다)
*** 인투더북 시리즈(Into the Book Series)는 매일(on a daily basis)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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