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정서는 먹는 것에 크게 지배받기 때문에 인스턴트 식품을 너무 자주 먹으면 삶을 가볍게 여기는 일회용 마음이 형성되기 쉽다고 나는 말했다. (중략) 재료를 다듬고, 섞고, 불의 온도를 맞추고,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인간도 함께 익어간다. - 꼰대는 말한다 중에서... p.79
#Catch up with 김훈) 사람은 먹는 것에 지배받는다.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 라면, 도시락. 정성이라고는 없다. 포장을 벗기고 먹으면 그만이다. 가족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는 어머니의 마음.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은 음식이 익으면서 같이 익어간다.
# A piece of my thoughts) 살다보면 과정이 먼저냐, 결과가 먼저냐의 문제에 늘 봉착하기 마련이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싸움처럼 답이 없는 문제다. 입사초기에 나는 진실이 승리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늘 내가 희생했다. 진실과 진심을 얘기하면(*과정을 중시하면) 언제나 승리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번번히 돌아오는 것은 꾸지람과 질책이었다. 책에서 나온 '선의의 거짓말'을 실생활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그시절부터였으리라. 이제는 시절이 많이 지나, 보고(?)의 요령, 사회생활의 짬(?)이라는 용어로 치환이 되어 그것이 실상 '선의의 거짓말'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집들이를 하는 여느 여식이 모든 음식을 주문하는 세상에서, 3분 안에 부대찌개와 각종 전골이 완성되는 세상에서, 이제는 인스턴트 식품이라는 말조차도 '그냥 음식'으로 치환되는 시절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재료를 다듬고, 섞고, 불의 온도를 맞추고,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과정은 어쩌면 이제 그리운 향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의 일상을 조금은 아날로그적으로(*과정지향적으로)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를 내리치는 대신 연필이나 펜을 들어치고, 일을 하기 위해 이메일을 띡 보내며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라는 허례허식 대신 직접 전화를 걸어 아침인사를 건네며 공조(?)해 보려고 한다. 당분간은.
- 결혼은 두 남녀의 일일 뿐 아니라, 사회적이고 풍속적인 것이다. 이것이 사람을 모아놓고 결혼식을 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삶이 요구하는 형식을 존중하라. 삶의 내용은 형식에 담긴다. -꼰대는 말한다. p80~81
#Catch up with 김훈) 흔히 결혼은 인륜지대사라고들 한다. 결혼은 형식이다. 결혼은 연애의 종결이 아니다. 결혼은 삶의 시작이다. 그 시작을 만인에게 공개선언하는 자리다. 앞으로 힘들테지만, 잘 살아내보겠다는 선포다. 이것이 결혼식에 사람을 모으는 까닭이다.
# A piece of my thoughts) 후배녀석이 스몰웨딩을 한 적이 있다. 회사 사람이라고는 고작 우리 부서만 불렀다. 축의금도 별로 안 모일 것인진대 왜 스몰웨딩을 하나 싶었다. 식장에 가보니 우리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가족, 친척, 친한 지인들. 많은 결혼식을 가 봤지만, 진심으로 그네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배를 채우기 위한 허례 하객은 한 명도 없었다. 가끔 연예인 중에 스몰웨딩을 하고 그 결혼식 비용을 사회에 환원하는 분들이 계신다.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허례 대신 진례를 택하고, 허례와 진례의 차액만큼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현실은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이어야 하고, 양가 부모님의 모진 질타도 견뎌내야겠지만.
- 결혼이란 오래 같이 살아서 생애를 이루는 것인데, 힘들 때도 꾸역꾸역 살아내려면 사랑보다도 연민이 더 소중한 동력이 된다. (중략) 오래 연애하다가 결혼한 부부가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이른바 사랑이 사그러진 자리에 연민이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은 단거리이고 연민은 장거리이다. - 꼰대는 말한다 중에서... p83
#Catch up with 김훈) 이 웬수야. 자주 듣는 말이다. (*출처는 밝히지 않겠다) 결혼은 현실이다. 사랑은 결혼을 이루지 못하고, 마지못한 정은 결혼을 완성한다. 그 정은 상대에 대한 정이라기보다는 그 부모에 대한, 자식에 대한 정이다. 어린 자식의 해맑은 모습을 바라본 부부는 결혼을 완성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부디 자식을 낳으라. 자식은 결혼을 장거리로 만든다.
- 똥이 편안해졌다는 것은 나이 먹은 나의 이야기일 뿐이고, 지금 동해에서 해가 뜨는 매일 아침마다 이 나라의 수많은 청장년들이 변기에 앉아서 내 젊은 날의 아침처럼 슬픔과 분노의 똥을 누고 있다. 밥에서 똥에 이르는 길은 어둡고 험하다. - 밥과 똥 중에서... p.45
# A piece of my imagination) 때는 대학교 축제 때였다. 아마 5월 정도였으리라. 바야흐로 젊음의 계절. 캠퍼스 내에서도 꽃들이 만개하고, 형형색색 하늘하늘 아름답게 그 젊음을 뽐내는 계절. 남자도 제대하여 이제 막 복학을 했던 이른바 복학생 오빠였다. 오빠? 오빠라고만 불러줘도 괜시리 기뻐했던 시절. 왠지 이제는 대학교에 남아 있으면 안 되는 것만 같던 시절.
외로운 남자는 복학하자마자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에 따라갔다. 갓 들어온 신입 여학생보다 오히려 2학년 여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갓 들어온 여학생들은 아직 고등학교 때를 벗지 못해, 화장기 없는 친구들도 있고, 이제 막 화장을 시작하여 서툴린 티가 물씬 난다. 딱 1년 차이지만 2학년 여학생들은 화장이나 옷맵시나 확실히 선배로서의 위풍이 있다. 게다가 3명이 유난히 친해서 늘 몰려다니는데 같은 과 남학생들은 그네들을 “퀸클”이라고 불렀다. 핑클을 패러디한 것이다. 이른바 퀸카클럽. 저기 들어가기 위해 서류심사까지 본다는 우스개 소리가 돌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퀸클들이 남자의 앞에 어느새 왔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셋이 나란히 인사를 한다. 세 명의 여학생이 너무 활기차고 밝은 표정으로 그것도 먼저 인사를 하니 남자는 이 상황이 몹시 낯설다. 선배라는 거, 나쁘지 않구나, 남자는 연달아 생각했다.
“아. 네. 반가워요”
“선배님 말씀 놓으세요. 한참 선배님이신데”
“아. 한참 선배. 맞죠.”
약간은 씁쓸하구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그래도 남자 선배들 중에는 나한테 제일 먼저 인사하네, 라는 편파적인 생각을 남자는 무심결에 하고 있었다.
남자는 새내기 오리엔테이션 내내 정중한 선배로서의 기품을 유지했다. 적어도 남자 본인 생각으로는. 남자는 후배들하고 그렇게 많이 친해지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특히 퀸클하고는 너무 데면데면하다. 원래 남자는 여학생들과 말을 섞는 것이 어색하다. 게다가 그네들이 이쁘다는 인식을 스스로 가지기 시작하면, 말까지 더듬는다.
그렇게 아쉬운 2월의 늦겨울이 지나고, 왁자지껄한 3월이 왔다. 캠퍼스의 꽃. 1학기 개강이었다. 캠퍼스의 3월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아직 새벽에는 물이 고인 자리에 살얼음이 얼 정도로 동장군이 위력이 남아 있을 때지만, 학생들의 옷은 생명의 탄생을 알리듯 알록달록 천연의 색이고, 하늘하늘하다.
분석을 끝낸 남자는 개강 첫 날 수업을 위해 민속관으로 향한다. 남자는 사회학과이다. 전공에 걸맞게 수업이 있는 건물의 이름은 민속관이다. 학생들은 민속관을 농담삼아 민속촌이라고 부르고, 혹은 막걸리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문 경영학도들의 수업이 많은 민속관 앞에서는 정치적 발언을 내세우는 학생들도 있고, 사회에 대한 이런 저런 불만을 민속관 앞 잔디밭에서 늘 술을 마시면서 신세한탄을 일삼았다. 게다가 그 술은 언제나 막걸리였다. 그런 전통이 남아 있어서인지 가끔 소주와 맥주를 사오는 학생들은 괜시리 한두 번씩 주위를 둘러본다. 이제는 인문 경영학도 뿐만 아니라, 공학도도 많이 찾아오는 이른바 술판이니 막걸리촌도 이제 옛말이다.
민속관 2층 계단을 올라가 모퉁이를 돈다. 갑자기 저기 백미터쯤 건물 반대편 끝에서 누군가 소리친다.
“오빠!”
남자는 또 선남선녀들 납셨다고 속으로 비아냥거린다. 남자는 쓸데없이 선남선녀들에게 시선을 뒀다가 여러 번 그 오빠의 험악한 눈빛과 맞닿뜨린 탓인지 쳐다보지도 않고 강의실로 향한다.
‘205호면 여기인가?’
갑자기 누군가 남자의 어깨를 탁 친다.
“오빠!”
“네? 저요?”
남자는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나오며 돌아본다.
“아니. 오빠는 불러도 아는 척도 안 하네요?”
돌아보니 퀸클 세 명이 나란히 서 있다.
“아! 이게 얼마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남자는 이 상황이 어색한지 극도의 존댓말을 내뱉는다.
“아니, 오빠, 말 편하게 하시라니까요.”
“저는 존댓말 하는 게 편하더라구요.”
“무튼 오빠 이 수업 들어요? 정치학 개론인데?”
“아… 쑥스럽지만 군대 가기 전에 F학점을 받아서 재수강하는 거에요.”
“하하하. 오빠도 F학점 받은 적이 있어요?”
“아니. 나는 왜 없을 것 같아요?”
“야. 늦겠다. 가자”
퀸클 중 한 명이 남자와 대화 중인 퀸클에게 한마디 한다.
“아. 빨리 가봐요. 수업 늦겠네요.”
“아. 네. 저희는 203호구, 서정이(*서양정치사상의 이해)인데, 김진희 교수님 수업. 오빠 들어보셨어요?”
“아. 그 수업. 교수님이 장난 아닌데. 악명이 높잖아요. 군대 가기 전에 들었죠”
“그럼 나중에 써머리 노트 좀. 저희 수업 가 볼께요.”
마지막 말을 남겨놓고 퀸클은 쏜살같이 사라진다. 남자는 얼떨떨하다.
‘천하의 퀸클이 나한테 왜?’
*** 남자의 상상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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