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5시 54분경에 일어났다. 새벽 3시, 3시 30분, 4시에 일어나기를 40일 넘게 해 왔던 나로서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분명 의식이 깨어난 적이 있다. 한참 지났는데? 지금까지 알람이 울리지 않을리가 없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말이라는, 그리고 일요일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 아니야? 내가 깊게 잠든 것도 아닌데, 못 들을리가 없지 라는 생각이었다. 하도 알람이 안 울려 일어나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5시 54분. 그 수많은 알람을 왜 나는 듣지 못했단 말인가?
실은 어제 10시 30분 넘어서 잤다. 새벽 3시, 4시에 일어나기 위해 나는 밤 9시에 자는 걸 선.택.했다. 아무리 늦어도 9시 반에서 10시 사이에는 잠이 들었다. 그런데 어제는 유난히 잠이 오지 않았다. 에이, 어차피 낼 일요일인데, 그리고 하루쯤 어때? 라는 안이한 생각이 스며들었다. 목사님들도 안식년을 가지는데, 나도 안식일(=일요일)을 하루쯤 가져야지.
- 유대인들은 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일주일에 하루를 구별해 특별한 일을 한다. 인생의 7분의 1을 이것을 위해 온전히 바치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사바스(sabbath)'라고 한다. 사바스를 '안식일'로 번역하는데, 그 원래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에는 부족하다. 사바스는 '자신이 습관적으로 하던 일을 강제로 그만두다'라는 뜻이다. - "수련" 중 '좌정' part, p.39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란게 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다.
- 깨진 유리창의 이론의 이런 경향은 간단한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다. 구석진 골목에 2대의 차량 모두 본넷을 열어둔 채 주차시켜두고, 차량 한 대에만 앞 유리창을 깨져있도록 차이를 두고 일주일을 관찰한 결과, 본넷만 열어둔 멀쩡한 차량은 일주일 전과 동일한 모습이었지만, 앞 유리창이 깨져있던 차량은 거의 폐차 직전으로 심하게 파손되고 훼손된 결과를 보여주었다.
깨진 유리창의 이론을 응용해서 사회 정책에 반영한 사례로는, 1980년대 뉴욕시에서 있었던 일이 대표 사례이다. 당시 여행객들에게 뉴욕의 지하철은 절대 타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지하철의 치안 상태가 형편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깨진 유리창의 이론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지하철 내의 낙서를 모두 지우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실천하여 실제로 지하철에서의 사건사고가 급감하였다. 한국에서는 지난 2012년 10월, 노숙인들이 많던 서울역 부근에 국화꽃 화분으로 꽃거리를 조성한 후부터 깨끗한 거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 위키백과 중에서
나는 오늘 유리창을 깨버린 것일까? 아니면 안식일을 가진 것일까?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주말을 맞이해 토요일 하루에 '심연', '수련' 두 권을 정주행했다. 아침형 인간을 실천하면서 "습관"이라는 것에 관심이 생겼는데, 토요일을 '독서데이'로 지정해서 온종일 책을 정주행하는 습관을 붙여보는 것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어제 실천해 본 것이다. 두 권을 읽어냈으니 나름 만족스럽다.
- 나는 이 위대한 개인을 발견하고 완성시키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네 가지 단계를 찾아냈다. 심연-수련-정적-승화의 단계다. 인간은 이 단계를 통해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울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서도 절실한 인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 "수련" 중 프롤로그 part, p.9
그는 4개의 책을 이렇게 미리 선포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 "정적"(2019.09.11 출간)까지 나왔으니, 이내 "승화"도 나올 것을 기대해 본다. 그의 4부작 시리즈를 기-승-전-결에 빗댄다면, 일단 나는 기-승까지 완독한 셈이다.
사실 "심연"을 막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이렇다 할 감흥이 없었다. 또 뻔한 자기절제에 대한 이야기이구나, 내면을 들어다봐라, 뭐 이런 이야기. 아침 일찍 일어난 탓인지 중간중간에 졸리기까지 했다. (*실은 지인에게 책을 빌렸는데, 그 지인에게 미안할 정도로. 뭐 사실 그랬기 때문에 완독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인에게 돌려줘야 하고, 또 지인에게 할 말이 있어야 하는 스스로의 데드라인 때문에(나는 이것을 "납기감각"이라고 부르고 싶다. 여담이지만, 책을 사놓으면 잘 안 보게 되는 이유가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까, 도서관에서 빌려도 잘 안 보게 되는게 공짜니까 라는 생각이 있는데, 적당한 관계의 지인에게 책을 빌리는 것은 대여기간을 연장하는 것도 마땅치 않고 해서 되도록 납기를 지키게 되는 모종의 의무감이 생기는 듯 싶다. 이런 식의 대여관계를 사업모델로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요새 책을 읽다가 좋은 문구, 인상적인 구절을 발견하면 이른바 '독서노트'에 모사를 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심연"은 한 줄도 베껴쓰지 않다가, 삼분의 일 정도 지났을 때 처음 옮겨 적은 문장이 이거다.
- '창조하다'라는 의미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요리사나 사제가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물의 쓸데없는 것을 과감히 제거해 신이 원하는 제물을 만드는 것처럼, 창조란 자신의 삶에 있어서 핵심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자신의 삶의 깊은 관조를 통해 부수적인 것, 쓸데없는 것, 남의 눈치, 체면을 제거하는 거룩한 행위다. - "심연" p.109
원래 창조력, 창의력에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유난히 눈에 가는 대목이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지금은 인기가 시들했지만, 한때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100인 안에 들어갈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비가 영화 "닌자 어쌔씬"에서 닌자 역할을 맡기 위해 단련한 그의 복근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칼로 벨 듯이 날카로운 복근. 실은 복근은 단련하는게 아니라, 주위의 지방과 군살을 모두 도려냈을 때 드러나는 것이라고 한다. 창조는 복근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와 주위의 시선에 휩싸여 자신의 창조성을 희생당하고 있는지도, 아니 스스로 그것을 방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많은 부분에서 단어의 재정의를 포함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단어의 어원 등을 통해 단어의 의미를 되새김질하고 곱씹어 보면서, 새로운 시각과 생각을 유도한다.
- 플라톤은 과거와 단절해 새로운 시작을 여는 동력을 고대 그리스어로 '엑사이프네스(exaiphnes)'라고 했다. 엑사이프네스는 흔히 '갑자기/한순간에'로 번역된다.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과 다르지 않다.
엑사이프네스의 시간은 우리의 타성과 게으름을 일깨우며 한곳에 의미 없이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고는 그림자의 허상이 아닌 빛이 일깨우는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 "순간" p.24~25
사실 나는 이런 식의 글쓰기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왠지 자신만의 색채가 별로 없는 것 같고, 단순한 뜻풀이로 지면을 채운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은 이런 식의 전개가 아주 많다. 저자의 이력을 들여다 봤다.
저자 배철현씨는 하버드대학교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 그래서, 라는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 오만은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혜택이나 특권을 스스로 성취했다고 착각하는 마음이며, 인간에게 비극을 가져다주는 첫번째 단추다. 그리스어로는 '휴브리스(hubris)'라고 한다. - "심연" p.141
- 오만에 빠져 눈 뜬 장님이 되었을 때 찾아오는 불행이 있다. 이 불행을 그리스인들은 '네메시스(nemesis)'라고 한다. '네메시스'란 흔히 복수로 번역되는데, 원래 의미는 '내가 당연히 감수해야 할 그 어떤 것을 받는 것'이다. '네메시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앙갚음, 보복 등의 의미가 아니다. 내게 주어진 일을 하지 않을 때 감수해야 하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 "심연" p.144~145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나는 그의 화법에 점차 빠져들었다. 복수란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의 결과이다. 참으로 신선한 발상 아닌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복수란 화에 휩싸여 상대를 불행에 빠뜨리게 하는 것인데,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돌아오는 결과라니. 타인의 불행을 모른 채 지나가는 사람은 '네메시스'적으로 그 자신도 불행에 빠져 외면을 당할 것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을 소홀히 하면, '네메시스'적으로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리지 하는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 오이디푸스의 답면에 스핑크스는 당황한다. 이전까지는 누구도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핑크스는 경계를 지키는 역할을 이행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 나머지, 절벽 위로 올라가 몸을 던진다. - "심연" p.169
스핑크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스핑크스 너무 귀엽지 않는가?^^ (*다시 진지하게) 스핑크스도 그를 상대한 어떠한 인간도 자신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자 오만(휴브리스)에 빠져 더욱 심오하고 기발한 수수께끼를 개발하기를 그만 두었던 것이다. 즉, 수련을 그만 두었다. 그래서 돌아온 것은 '네메시스(복수)'였다. 그의 죽음은 스스로가 자초한 자연스런 결과다.
사실 역시 고대언어학을 공부해서 그런지, 그가 단어를 재정의하기 위해 따오는 어원, 고대의 일화(그리스 로마 신화, 단테, 성경의 예시 등)를 듣고 있자면, 그의 해박한 지식에 어느 순간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단편적인 일화로만 들어서인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일화들이 그의 얘기를 따라 퍼즐 조각 맞춰지는 듯한 경험을 해서, 몹시 흥미롭게 읽었다.
또한 고대의 예를 많이 드는데, 지금으로부터 몇 천년 전의 인간들도 현대와 조금도 변함 없는 고민을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새삼스레 씁쓸해졌다. 우리가 고전으로 칭송하는 수많은 작품들이 실은 외부의 기술만 발달했지 하나도 변하지 않은 인간의 나약한 정신에 대해 얘기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 자기절제가 힘든 호모 사피엔스는 그토록 수많은 고뇌와 성찰을 글을 통해 남기고, 그를 통해 또 스스로를 제어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지금도 수없이 넘쳐나는 자기계발 책들은 수천년전과 똑같은 내용을 외치고 있을 뿐이다. 절제.
- 문제는 스스로를 기만할 만큼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선택에 대한 믿음이 있는가이다. 최선이란 자신을 위한 최적의 선택이다. 묵상을 통해 그 유일무이한 운명의 길을 선택하는 순간은 거룩하다. 자신에게 진실한 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진실한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자기기만이다. - "심연" p.200
- 미래란 과거나 현재에 내가 선택한 결과에 불과하다. 우리는 흔히 시간의 흐름을 과거-현재-미래로 나누지만 사실 시간은 흐르는 강물처럼 하나다. 미래는 오늘 내 선택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다. - "심연" p.202
- 우리는 대개가 위대한 성인들이 만들어놓은 빛나는 별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문득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자기 것이라는 이유로 외면한다. 이렇게 남의 것이나 따르는 사람이 계속되는 한 자신만의 고유한 문법을 만들어내는 참신한 삶은 찾아오지 않는다. 진부는 우리를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하는 끔찍한 훼방꾼이다. - "심연" p.219
결국 인생이란 온갖 주위의 소음을 제거하여 삶을 단순화하고 자신의 깊은 심연에 들어가,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것이다.
실은 "심연"에서 힘을 너무 빼서인지, "수련"은 생각보다 잘 읽히지 않았다. 연달아 읽어서 그런지 "심연"에서 하는 말들을 다시 반복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 미래를 뜻하는 영어단어는 '퓨처(future)'다. 퓨처는 라틴어 '푸투룸(futurum)'에서 유래했다. 푸투룸은 라틴어 문법에서 '존재하다/되다'라는 동사 '에세(esse)'의 능동분사형이다. 즉 '(내가) 미래에 될 어떤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 "수련" p.38
- 미래는 지금-여기에서 '내가 원하는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부단히 수련할 때 만들어지는 예술이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 최선을 다할 때 자연스레 다가오는 신의 선물이다. - "수련" p.39
- 어떤 사람에게 탁월함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습관이다. 내가 처한 환경은 나의 습관이 지은 집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환경과 운명을 원망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말을 살펴 매일매일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 "수련" p.307
사람들은 누구나 잘 살고 싶어한다. 내 미래가 밝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년초에 많은 사람들이 토정비결이라든지 올해의 운세라든지 타로카드를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도 알 수 없는 나의 미래, 제발 알려줘~. 배철현 교수는 말한다.
미래는 그대의 심연에 있는 것이고, 지금-여기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대는 미래를 볼 수 있다. 어디서? 지금, 바로 여기에서.
ps-1.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책은 마음을 다잡을 때 꺼내볼 수 있도록 항상 가까이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침형 인간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아침에 자기계발 서적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동기부여를 하고, 하루를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처럼.
ps-2. 책을 읽고 고대언어와 고대의 이야기에 관심이 생겼다. 그렇다고 히브리어라든지 수메르어를 익힐 깜냥은 되지 않고(제발 영어라도...), 그리스로마신화를 다시 한번 꺼내 들어보려고 한다. 또 단 한번도 시도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단테의 '신곡'을 읽어볼까 한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와 '일리아스'는 별책부록으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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