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익숙해짐에 대해 얘기해볼려고 합니다.
익숙해지다.
참 어려운 말인 것 같습니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저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한 번 여러분에게 속내를 그냥 털어놓는 방식으로 두서없이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그러면서 저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갑자기 왜 익.숙.해.지다 라는 화두에 꽂혔냐 하면, 실은 제가 오늘로 아침형 인간 70일째입니다. 가끔 6시 넘어서 일어난 적이 있지만, 평균적으로 새벽 3~4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70일 연속 했으니, 먼저 '엄지척'해 주시면 신이 나 얘기를 더 전개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70일을 했는데, 문득 근자에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일더군요.
근데 이게 처음이 아니었어요. 일전에도 잠깐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아침형 인간 생활은 저에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한 4년전 쯤이었을까요? 그 당시 약 4개월 가량을 아침형 인간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4시 30분에 주로 일어나서 요가를 하고, 영어공부를 한시간 가량한 후, 아침식사를 하고 출근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다소 줄었지만, 당시에는 술을 엄청 즐겼기에, 갑작스럽게 변화된 그 생활을 지속해 나가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같이 어울렸던 사람들도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았습니다. 물론 그래서 저 자신에게 일주일에 하루쯤은 스스로 보상을 해 줬습니다. 바로 불금엔 과음. 하지만 그것도 원칙이 있었습니다. 절대 다른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다. 집에서 혼자 맥주를 들이부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생활을 하기가 쉽지가 않더군요. 당시에는 교회 생활도 나름 청년부 활동을 하면서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저보다 딱 한 살 많은 자매님이 저를 무척이나 챙겨주었습니다. 예배시간 전에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 주기도 하고, 주중에 안부를 물을 정도로 알뜰히 저를 챙겨주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다소 폭력적이지만, 고.작. 한 살 차이인데, 무척이나 저를 어린 조카 다루듯이 챙겨주었습니다. 챙김을 받는게 나쁘지는 않아서 저도 사실 누나, 누나 하며 잘 따랐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그 누나에게 고민을 상담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누나가 이렇게 말해 줬습니다.
"**야, 넌 지금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거야. 넌 지금 백지야. 기존에 얼룩진 너는 이미 찢어버렸어. 기존에 꽉 차 있었던 너를 지워내려고, 새 도화지를 꺼내서 이제 막 그림을 그릴려고 하는데 어찌 심심하지 아니할 수 있겠니? 새로운 너의 모습을 기뻐하며 그려 가렴."
그때, 역시 한 살 차이는 엄청난 차이라는 것을 몸소 실감했습니다. 그런데 왜 4개월밖에 못했냐구요? 실은 제가 당시 아침형 인간이 되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한 여인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가지기에는(?) 너무나도 완벽한 여자였습니다. 진실로 그녀의 꿈은 "세계평화"였습니다. 사실 그녀는 저의 이상형이 아니었습니다. 미스코리아들이 가식적인 웃음을 걸치며 쏟아내는 연습된 답변이 아니라, 진실로 그 말을 꺼낸 그 순간 전 그녀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걸맞는 완벽한 남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침형 인간 4개월쯤 되었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제 되었다. 곰도 100일이면 사람이 되는데, 나도 완벽한 웅남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과감하게 만나자라고 데이트 신청을 했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곧 결혼한다'였습니다. 그 후로 아침형 인간은 저기 태평양 한 섬의 모래사장의 한 줌 모래알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여기까지 말씀드리면 니가 싫어서 결혼한다고 한거다, 라고 꼭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실제 그녀는 결혼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 그 웨딩 프사까지 조작된거라면 저로서도 더 할 말이 없습니다만.)
그리고 4년이 흐른 2019년 현재. 아침형 인간을 시작했습니다, 다시. 이번에도 사랑에 빠졌냐구요? 제가 중학교 때 공부로 전교에서 좀 놀았는데, 그건 모르셨죠? 지금은 아주 명석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주 둔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한 번 속지, 두번 속지는 않습니다. 그냥 제가 인생을 너무 흥청망청, 네, 말그대로 너무 흥청망청 산 것 같아서 다시 제대로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솔직히 20일을 넘어가고, 30일, 40일을 넘어갔을 때는 저는 사실 아침형 인간 전도사가 될 지경이었습니다. 매일 아침이 어쩜 이렇게 나만을 위해 있는 것 같고, 매일 매일 성취감이 넘쳤고,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찼습니다.
그런데 60일이 넘어서자, 과연 나는 잘 살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할까 라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오늘 아침 샤워를 하다 문득 이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익숙해지다.
전 어느새 이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것입니다. 제가 원래 어떤 일에 쉬이 흥미를 잃는 타입이기는 하지만, 그래서일까요? 그럼 어떻게 하면 다시 흥미를 되찾을 수 있을까? 명상을 물구나무 서서 해 볼까, 소리를 지르면서 달리기를 해 볼까, 정말 아침에 독서를 맥주를 마시면서 해볼까, 별의 별 생각을 다 해 봤지만, 그렇다고 흥미가 다시 돋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평균적인 인간이라면 66일이 지나면 평생의 습관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다시 야행성 인간으로 돌아가는데도 66일이 걸린다는 겁니다.(*솔직히 이제 못 하겠습니다. 그냥 아침형 인간으로 살래요. 이 힘든 싸움은 다시는 자신이 없습니다)
사실 이것보다 핵심적인 질문은 이것일 겁니다.
다시 흥청망청한 과거로 돌아가면 나는 기쁠까?
제 답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겁니다. 다시 제 자신을 일그러뜨리고, 파괴적이지만 유희적 삶을 산다고 해도 저는 거기서 행복을 찾지는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럼 지금의 이 느낌은 무엇일까?
다시 자문해 봤습니다. 어쩌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조금씩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아침형 인간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니까 20일, 30일째 했을 때는 이렇게 살면 뭐라도 해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 미래의 나는, 미래의 인생은 틀림없이 뭔가라도 바뀌고 말것이라는 보상심리가 깔려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제 마음 속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무.려. 칠.십.일.을 했는데, 왜 바뀌는 게 없지? 왜 나는 조금도 바뀐게 없냐고. 왜 나는 70일 전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고, 전혀 진일보하지 못한 것이지? 이럴리가 없는데. 절대 이럴리가 없는데. 70일을 해도 이렇다면, 앞으로 70일을, 700일을, 7000일을, 더 한다고 해도 바뀌지 않으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마저 저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아... 제가 글을 쓰면서 답을 찾고 말았습니다. 전 두려웠던 겁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지만(밖으로는 나는 잘 살고 있으니, 나를 봐, 어쩜 너무 멋진 생활을 하고 있지 않으니? 라고 자랑질 하고 있었는데) 정말 어찌보면 구질구질할 정도로 꾸역꾸역, 겨우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바뀐 게 하나도 없어서 저는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절망할 날들이 찾아올까 두려워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멋진 사람인데, 내 인생에서 세계적 수준으로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데, 나는 눈 앞의 자그마한 것에도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70일을 명상을 해댔는데도, 저는 그저 나약한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나약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속은 시원합니다. 뻥 뚫립니다.
처음에 얘기했던 말을 다시 꺼내 보겠습니다.
익숙해지다.
그렇습니다. 제 스스로를 다시 위로해 보겠습니다. 어쩌면 저는 70일 동안 많이 변했을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도화지에 이미 저는 아름답고 향기나는 꽃나무를 키웠는데, 그 향이 너무 익숙해서, 그것에 마취되어 저만 모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고는 앞으로 더 나아갈 자신이 없어,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합리화해 볼려고 합니다.)
저는 익숙해지다는 단어에서 제 스스로를 위로하는 행간을 읽어냈습니다.
앞으로 더 익숙해져, 저는 더 미쳐 날뛸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일수록 그 익숙해지다의 행간을 읽어내는 지혜를 갖추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더 익숙해질지도 몰라 두렵지만, 그래도 더 익숙해지려고 해 볼랍니다.
- 별이 미세먼지에 휩싸인 어느 저녁에......
'아침형 인간 프로젝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형 인간 211일째입니다. (0) | 2020.04.29 |
---|---|
아침형 인간도... 슬럼프에 빠집니다. (0) | 2020.03.29 |
[아침형 인간 실천편] D-134 (-7) 19.10.01~ (0) | 2020.02.11 |
아침을 지배했으면, 이제 밤을 지배하라! (8 PM 클럽의 시작) (0) | 2020.01.05 |
굳이 또 한 권의 아침형 인간 책은 필요한 걸까? - 변화의 시작, 5 AM 클럽 (0) | 2019.09.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