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세금의 세계사>라는 책 1장, 햇빛 도둑 내용을 요약 정리해 보겠습니다.
1. 1066년 : 영국에 노르만족 침입. 그 이전부터(언제?) 영국에는 연무세(smoke-farthing) 또는 굴뚝세(fumage)라 불린 난로세(hearth tax)를 교회에 납부하고 있었음
2. 1662년 : 제임스 2세 재위 시절. 법으로 난로세가 강제됨. 화덕, 난로, 벽난로 1개당 1실링을 연 2회 납부 => 문제는 징수원들이 징수를 하기 위해 집안 곳곳을 샅샅이 뒤짐 => 프리어버시 침해
3. 1688년 : 명예혁명. 윌리엄과 메리가 제임스 2세를 폐위시키고 새로 왕이 됨. 피를 흘리지 않고 혁명이 성공하여 명예혁명이라고 부름. 100%는 아니지만, 일정 부분 세금에 대한 불만이 있었음. 그래서 윌리엄은 혁명을 정당화하고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당연히 난로세를 전면 폐지함. 명분은 "영원히 폐하를 기리는 공덕비를 세우기 위해".
4. 하지만 혁망을 준비하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빌린 돈과, 아직 스코틀랜드에 남아 있는 제임스 2세의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음.
5. 1696년 : 그 해결책으로 창문세(window tax)를 도입. 징수원들이 집에 들어가지 않고 외부에서 창문의 수만 세만 되니 프라이버시 침해도 없고, 징수도 간단하니 얼마나 획기적인가.
6.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창문을 없애기 시작. 그나마 해가 잘 나지 않는 흐릿한 영국의 날씨에서 사람들은 납세 때문에 창문을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되지 않는가? 하지만 당시에는 전기가 아니라 양초를 사용했던 시기이다. 그들은 햇볕과 신선한 공기를 포기했다. 실제로 당시 공중 위생에 치명적인 역할을 했다는 통계도 있음. 유명한 찰스 디킨스(1812~1870)는 "'공기처럼 공짜'라는 표현은 더 이상 맞지 않는다. 창문세를 부과한 이후부터 공기도 빛도 공짜가 아니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
7. 창문세의 문제는 위생 뿐만이 아니었다. 시골의 10파운드 주택이 런던의 500파운드 주택보다 창문이 더 많은 경우가 있었다고 애덤 스미스가 주장합니다. 역설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8.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1813년에 출간)에서도 창문이 부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엘리자베스는 이곳저곳 경치가 꽤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콜린스 씨가 기대한 만큼의 황활한 반응은 없었고 그가 주택 전면 창문의 숫자를 세어 유리 끼우는 데 든 비용을 이야기해줘도 크게 감단하지 않았다"
9. 185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의회에 창문세 폐지안이 상정되었고, 1851년에 전국적으로 폐지 운동이 일어나고 나서야 폐지되었다. 프랑스에서는 75년 후에 페지되어다고 한다. 약 160년간 유지된 창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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