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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리뷰

한강 단편소설 : 야간열차 (ft. 그가 그토록 야간 열차를 타고 싶어했던 진짜 이유)

by 북노마드 2023.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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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상남자처럼 잘 생긴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술에만 취하면 야간 열차에 대해 떠들썩하게 늘어놓는다.

 

청량리에서 밤 열한시에 출발하는 기차

제천에서부터 태백선을 타고 산맥을 넘어 어둠을 뚫고 새벽에 이르면 동해역에서부터 바다를 보며 달린다.

 

 

그가 야간 여간 열차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눈에서 이상스런 광채가 일었다

 

그의 이름은 동걸.

 

그때 우리 나이는 모두 스물 살이었다

 

술에 취한데다 젊었던 우리들 중 몇은 우리도 한번 가 보자고 일어난다.

 

다음날 밤 열 시 삼십분에 청량리역.

 

야간 열차의 주인공이었던 동걸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우리는 환불을 하고 동걸을 디스하며 머리꼭지까지 술에 취해 버린다.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나타난 동걸은 사정이 있었다고 정색했다.

우리는 그날도 술에 취했다.

 

막무가내로 술을 마시는 스무 살의 우리와 달리 동걸은 술을 마시는 날을 정해 놓고

그렇지 않은 날은 단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언젠가 늦여름날 나와 교문을 나서던 동건이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쓰러졌다.

 

이명이야, 별거 아냐.

 

그렇지만 그의 낯빛은 창백했다.

 

기차 바퀴소리.

 

그가 중얼거렸다. 그때 동걸에게서 처음으로 서늘한 눈빛을 봤다.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로.

 

그러다 내가 군입대를 앞둔 환송회 날이었다. 우리는 거나하게 취해 한 차례 실패했던 야간열차를 다시 타보기로 했다

그때도 동걸은 딱 잘라 거절했고, 떠나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고집스럽게 역사를 벗어났다

 

제대 후 우리 집은 입대 전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인지 차츰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큼 형으로 결혼으로 나보다 어린 형수가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나는 어린 형수의 눈치가 보여 차려준 밥의 돌도 집어 삼키고 때묻고 땀이 찬 옷들도 갈아 입지 않았다. 집에 있는 시간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다 방위 생활을 끝내고 먼저 취직한 동걸을 찾았다

 

평생 야생적일 것만 같은 동걸의 말씨에 어딘가 기성 세대의 냄새가 났고, 대학이라는 공동 생활이 끝난 우리의 화제는 곁돌았다

 

야간 열차 기억하냐

 

 

내가 말했다

 

난 다 잊어버렸어.

 

차갑게 동걸을 답했다. 그런 동걸을 붙잡아 포장마차에서 한 잔을 더 했다. 밤도 늦었고 몹시 취했고 택시도 잡히지 않아 나는 동걸의 집에 신세를 지기로 했다. 반지하의 셋방

 

다음날 깨질 듯한 머리통을 부여잡고 있는데 동걸의 여동생 선주가 들어왔다

 

옷 갈아 입어야 하는데 잠깐 나가주시거나 이불 속에 계시겠어요?

 

그곳에서 선주는 작은 오빠 동주를 보여줬다. 동주는 동걸의 쌍둥이 형제였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생계를 잇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다가 뇌사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동걸오빠는 언제라도 우리를 버리고 떠날 거예요.

 

나는 그때 깨닫았다. 이명이야, 라고 두 귀를 틀어막고 울부짖는 이유를동걸은 가족 뿐만 아니라 우리도 언젠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야간열차를 타고 말이다.

 

우리는 각자의 생활로 연락이 뜸해졌다. 그러다 어느 늦은 여름 전철역에서 누군가 내 팔소매를 잡는다. 선주였다. 2년만이었다

 

"동걸오빠한테 못 들었어요? , 두 달 뒤에 결혼해요."

 

늦었지만 그해 가을 나는 취적을 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직장 생활은 의외로 나와 잘 맞았다. 입대 전에 동걸이 의젓한 어른인 척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영현이 넌 장난으로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 세계에 가장 잘 적응할 유형이야. 네가 부러워."

 

녀석의 말이 옳았다. 그리고 나는 야간 열차를 잊었다

 

그러던 늦겨울날 동건에게 여러 번 전화가 온다. 몇 차례 엇갈려 겨우 새벽 세 시에 우리는 서로 술에 취해 통화를 했다.

 

"벽제에 가자."

 

동걸이 말했다. 나는 벽제에 가지 않았다. 죄책감 탓인지 몇 일 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벽제의 거리에서 동걸이 목구멍에서 불을 내뿜고 있었다.

 

몇 일 뒤 다시 동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난 떠난다."

 

나는 배웅을 나와 행선지가 어디냐고 물었다.

 

"동해."

 

좀 있어 동걸의 차표가 역무원의 펀치에 뚫리고 동걸의 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열차 출발시간에 임박한 사람들에게 나는 등이 떠밀렸다. 역무원이 차표를 요구했다. 그때 기적 소리가 울렸다. 나는 내달리기 시작했다. 기차도 동시에 내달리기 시작했다. 한차례 넘어졌지만 나는 몸을 일으켰다. 오른발, 왼발 기차에 발을 올렸다. 헐떡이는 숨을 골랐다.

 

빗발 속에서 춤추는 인가의 불빛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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